한때 골프로 드넓은 미국 무대를 누볐다. 얼마전 아무도 몰랐던 꿈을 조용히 이뤘다. 그러나 진짜 꿈의 시작은 지금부터다. 그의 눈빛은 할리우드를 향하고 있다.
이달초 개봉됐던 액션영화 ‘리벤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플레이어 출신 여민선 아니 새내기 배우 여민선의 데뷔작이다.
사형수들만 모인 죽음의 섬 ‘수라도’에서 벌어지는 전직 특수경찰 ‘율’(브루스 칸)과 절대악 ‘쿤’(박희순)의 혈투를 하드코어하게 그린 이 영화는 대중과 평단의 그저그런 반응속에 소리없이 IPTV로 직행했다. 그러나 여민선에게는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럽기만 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여전사 ‘쏘냐’ 역을 연기했다. 5분여의 짧은 출연 분량이지만, 반삭의 헤어스타일과 선명한 복근 그리고 이글거리는 짐승의 눈빛으로 숨 막히는 긴장감과 공포감을 자아낸다.
3년간 하루도 빼 먹지 않고 무려 1000번씩 복근 운동을 거듭한 결과였다.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를 오랫동안 경험하며 다진 ‘강철 멘탈’도 한 몫했다. 자신보다 대부분 나이는 어리지만 연기력은 훨씬 앞선 베테랑 배우들 앞에서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앞서 액션배우 전업을 염두에 두고 10여년간 복싱을 수련한데 이어, 5년전 서울시 복싱협회 심판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나서 액션스쿨에서의 액션 연기 수업은 물론 기본. ‘리벤져’ 주연인 브루스 칸 휘하에서 3년 가까이 많게는 스무살 가까이 어린 남자 액션배우들과 토할 만큼연습에 연습을 반복했다.
홍콩 액션스타 성룡의 대역과 홍금보의 무술팀 ‘홍가반’ 소속으로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활동했던 브루스 칸은 그의 이 같은 열정에 감복한 나머지 “앞으로 넌 내 남동생’이라며 의형제(?)를 맺었다. 말도 붙이기 어려울 만큼 카리스마 가득한 브루스 칸을 여민선이 스스럼없이 “형님”으로 대하는 이유다.
지나온 이력을 더듬어보면 왜 이토록 힘든 액션배우의 길로 들어섰는지 다소 의문이 들 정도다. 정일미 박현순 등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입문 동기이고, 2000년부터 2005년까지 LPGA 투어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비록 메이저 대회 우승 경력은 쌓지 못했지만, 많은 골프팬들은 그를 박세리 박지은 김미현 한희원 장정 등과 함께 LPGA ‘코리언 돌풍’의 1세대로 기억한다.
여민선은 “실은 아버지(풍정흥업 여정호 대표)가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 등을 제작하시고 100여편의 외화를 수입하셨던 원로 영화인이시다. 4남매 중 유일하게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다”며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구해오셨던 영화들을 집에서 보고 자랐던 경험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것같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골프채를 손에서 완전히 놓은 건 아니다. ‘골프 초보자가 가장 알고 싶은 100가지’ ‘나.맞.골(나에게 맞는 골프는 따로 있다)’ 등 3권의 골프 교습서를 출간한 저자이고, 대학과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후배들을 양성중인 티칭 프로로 왕성히 활동중이다.
“제 버킷리스트가 교육자와 배우였는데, 결국 이루고야 말았죠. 영화 개봉후 여러 지인들이 ‘정말 축하하고, 그동안 비웃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답니다. (웃음) 할리우드도 꾸준히 노크하고 있어요. 아시안 여성 액션배우가 많지 않다는데, LPGA에서 뛸 때 영어도 배워놓은 제가 못 가란 법은 없잖아요? 할리우드 데뷔의 꿈을 달성하고 나면 여성들을 위한 체육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마지막 목표입니다. 휴…말씀드리고 나니 할 일이 너무 많네요. (웃음) 하지만 두고 보세요, 반드시 해 내고 말 겁니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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