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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 이하 연체자 3년 빚 갚으면 나머지 모두 탕감

입력
2018.12.21 11:30
수정
2018.12.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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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액 연체자 대상 상시 빚탕감 정책 내년 실시 


정부가 내년 1,000만원 이하의 금융권 빚을 소득이 없어 갚지 못하는 소액채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빚 탕감 정책을 선보인다. 3년만 빚을 갚으면 나머지 빚은 정부가 모두 탕감해주는 식이다. 또 금융권 빚 뿐 아니라 통신료와 같은 비금융채무도 정부의 빚 탕감 대상에 포함된다. 빚을 진 청년들이 연체기록 때문에 취업을 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채용단계에선 신용등급을 활용하지 않는 방안도 추진된다.

 ◇빚 탕감 상시화 

금융위원회는 21일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빚 탕감 정책은 대통령 공약에 따라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넘게 갚지 못한 ‘장기소액연체자’를 대상으로 한 일회성 대책이었다. 이로 인해 대략 380만명이 빚 수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 대책은 정작 당장 신용회복이 시급한 채무자에겐 별 도움이 안 됐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소액채무자 특별감면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했다. 소득 수준이 낮아 1,000만원 이하의 빚을 갚을 여력이 안 되는 채무자가 지원대상이다. 정부는 구체적인 지원요건은 추후 다시 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큰 틀은 소득이 없어 당장 빚을 갚지 못해도 일단 구제해주겠단 게 핵심이다. 대신 모든 빚을 한 번에 탕감해주는 게 아니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차원에서 3년간 빚을 성실히 나눠 갚을 경우에만 나머지를 탕감해주는 방식이 된다.

이는 현재 운영 중인 채무조정 제도가 모두 연체 기간이 길수록 혜택을 받는 구조로 설계돼 신속한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데 미흡하다는 지적 때문이다. 현재 채무자가 빚을 감면받을 수 있는 방식은 크게 3가지다.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위원회), 개인회생(법원), 개인파산 등이다. 개인워크아웃은 연체 90일 이후 신청할 수 있는데, 조정된 채무는 8년에 걸쳐 갚아야 한다. 채무자로선 빚을 감면받긴 하지만 이미 금융채무불이행자로 등록돼 사실상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회생의 경우 빚을 3년만 갚으면 나머지를 모두 탕감받을 수 있지만 최저생계비 이상의 고정 소득자만 신청할 수 있다. 개인파산은 채무원금이 3,000만원 이상인 채무자만 신청할 수 있다. 결국 연체기간이 짧고 소득이 없는 이가 빚을 감면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장기연체자가 돼야 하는 구조다. 최준우 금융위 국장은 “연체기간이 길어지고 채무 규모가 커질수록 신용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회복 가능성도 점점 멀어지는 만큼 적기에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상시적인 빚 탕감과 함께 채무자의 체감 효과를 높이는 차원에서 현재 감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미상각 채권도 감면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은 금융사가 장부에 못 받을 돈으로 보고 충당금을 쌓은 상각채권만 감면 대상에 들어간다. 금융사들은 대략 연체 발생 6개월~1년 뒤 해당 채권을 상각처리하는데, 미상각 채권도 감면 대상에 들어가면 채무자로선 앞으로 빚 감면 기간을 앞당길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정부는 감면율도 현행 30~60%에서 20~70%로 확대하기로 했다. 더 갚을 수 있는 사람은 더 갚게 하고 어려운 사람은 덜 갚도록 하자는 취지다.

내년부턴 실업, 폐업, 질병 등으로 당장 빚을 갚기 어려운 채무자도 연체 발생 전 신용회복위원회에 긴급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 최대 1년 빚 상환을 미뤄주는 것이다. 대신 다른 채무조정 제도와 다르게 이자감면은 받을 수 없다. 또 통신료와 같은 비금융채무도 채무조정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도 관계부처와 협의해 추진하기로 했다.

청년들이 취업을 준비할 땐 이들의 신용정보를 활용하지 않는 방안도 추진된다. 연체정보 등이 취업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정부의 신용회복 대책. 금융위 제공
정부의 신용회복 대책. 금융위 제공

 ◇햇살론 금리 오른다 

아울러 정부는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이 연 24%의 고금리 대부업 대출에 내몰리지 않도록 연 10% 후반대의 저신용층 전용 ‘긴급 생계ㆍ대환자금’ 대출 상품을 내 놓기로 했다. 신용도 7등급~10등급의 취약층을 기준으로 삼는다. 다만 무조건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득은 있지만 신용도가 낮아 대부업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차주를 흡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서민 대상 정책대출 지원체계도 확 바꿀 예정이다. 저신용자들이 주로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기준을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서민금융상품엔 햇살론, 미소금융, 새희망홀씨 등이 있다. 이들 상품은 2금융권 대출상품에 견줘 금리가 훨씬 낮다. 서울 지역 저축은행의 평균 신용대출 금리는 연 18%에 달하지만 근로자 전용 햇살론은 금리 상한이 연 7.5%(상호금융) 또는 9.4%(저축은행)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 상품 대부분 우량 차주에 지원이 집중돼 있다. 정책상품이 시장에 견줘 지나치게 낮은 단일 금리로 제공되다 보니 신용도가 좋은 사람 위주로 지원을 받게 되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결국 시장 왜곡으로 민간 금융사들이 중금리 상품을 만들 유인을 헤치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이에 정부는 단계적으로 기존 정책상품 금리(8~10%)를 올릴 예정이다. 우량차주들이 자연스럽게 민간 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저신용자들은 앞으로 정책대출을 받기가 쉬워지지만 반대로 중신용자들은 정책대출을 받더라도 기존보다 금리가 올라 이자부담이 커질 수 있다.

 ◇재원은 민간 금융사 출연금·기부금 

정부의 서민금융지원 대책은 크게 햇살론과 같은 정책대출과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채무조정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 이 사업에 정부 예산은 하나도 투입되지 않는다. 서민금융 사업별로 사업비 출처가 제각각이긴 하지만 대부분 민간 금융사 출연금과 기부금(일반 기업 포함), 복권기금으로 충당한다. 새희망홀씨와 같은 대출상품은 은행이 모든 비용을 댄다. 정부가 민간 기업들 돈을 끌어다 쓰면서 생색만 낸다는 지적이 적잖다.

정부가 이번에 추가 빚 탕감을 포함한 대규모 대책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재원 확보가 중요하다고 보고 금융기관 상시출연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개인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전 금융권으로 출연을 확대한다. 지금은 햇살론 취급기관인 상호금융과 저축은행만 보증재원을 출연하고 있다. 출연금은 가계신용대출 규모에 비례해 물리기로 했다. 또 금융권 휴면자산의 출연대상 기관과 출연자산 범위도 확대할 예정이다. 최준우 금융위 국장은 “2020년 복권기금 출연이 종료되는 만큼 정부의 재정을 확보하는 방안도 강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앞서 열린 정부 국감에서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업과 금융회사의 팔을 비틀어 모은 출연금과 휴면예금, 재무조정 회수금 등 서민의 호주머니를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정부는 예산 한 푼 안 들이고 생색만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대책이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경제원칙을 흔든다는 비판도 없잖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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