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기업의 크리스마스 경품 마케팅이 자취를 감추면서 관련 보험 상품인 ‘컨틴전시 보험’의 수요도 실종된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컨틴전시 보험은 보험사와 계약자가 사전에 특수한 보험금 지급 사유를 정하고 요건이 충족되면 보험금을 지급하는 특수보험이다. 컨틴전시(contingency)는 ‘만약의 사태’라는 뜻의 영어 단어다.
국내에선 주로 대형 이벤트와 연계한 경품 마케팅을 진행하려는 기업들이 이 보험상품을 이용한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추첨에 따라 자동차를 경품으로 지급한다’는 광고를 하려고 할 때 실제 눈이 내려 거액의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하는 식이다.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자사가 후원하는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면 상품을 주는 마케팅을 하려는 기업도 보험을 찾게 마련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국내 컨틴전시 보험 시장에 호황을 부른 대표적 이벤트다.
그러나 올해는 컨틴전시 보험의 암흑기다. 한국일보가 이날 국내 손해보험업계 상위 4개사(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시장점유율 기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가운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컨틴전시 보험을 판매한 회사는 한 곳도 없다. 보험금 발생 확률이나 지급 규모가 불확실해 주로 위험 감수 능력이 있는 대형 보험사가 취급해온 상품이란 점을 감안하면 올해 ‘크리스마스 보험’ 판매 실적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뿐만 아니다. 최고의 대목이라 할 수 있는 올해 평창동계올림픽과 러시아월드컵 때도 이들 4개사는 컨틴전시 보험을 한 건도 팔지 못했다.
컨틴전시 보험의 판매가 저조한 까닭은 불경기와 관련이 깊다. 내수가 부진하다 보니 기업이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판매를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올해는 실적이 없다”며 “기업이 요청하지 않는 이상 보험사가 나서서 판매하는 성격의 상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해상 측도 “올해 들어 컨틴전시 보험 문의를 해 온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고 밝혔다.
고가 경품 마케팅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컨틴전시 보험 시장 위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사행성 행사에 보험상품이 동원되는 것은 보험 본연의 역할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한 대형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명시적인 공문 형태는 아니지만 수년 전 금융당국이 관련 상품의 판매와 관련해 주의를 준 것으로 안다”며 “그 여파로 컨틴전시 보험 판매가 갈수록 위축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반 보험상품과 달리 컨틴전시 보험은 손해율 측정이 쉽지 않아 보험사로선 손익계산이 불확실하다는 특성도 있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컨틴전시 보험의 경우 과거 통계를 축적하기가 어려워 보험료 산출의 근간이 되는 ‘대수의 법칙’(과거 사례가 많을수록 미래 발생 확률 예측이 정확해짐)이 적용되기 쉽지 않다”며 “규모가 커지기엔 제한적인 상품”이라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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