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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해고ㆍ분노만 쌓여… 대통령 만나 빨리 묻고 싶다”

입력
2018.12.21 04:40
수정
2018.12.28 18:4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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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가 된 文정부의 약속들 <1> 비정규직 제로]

“헛된 희망이었다면 정신차리게…” 대화 요구 나선 비정규직 대표단

16일 충남 태안에 위치한 고 김용균씨의 빈소에서 만난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왼쪽부터 김수억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 김소연 전 기륭전자 조합원, 김재근 청년 비정규직, 이태의 학교 시설관리 근로자. 태안=전혼잎 기자
16일 충남 태안에 위치한 고 김용균씨의 빈소에서 만난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 왼쪽부터 김수억 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 김소연 전 기륭전자 조합원, 김재근 청년 비정규직, 이태의 학교 시설관리 근로자. 태안=전혼잎 기자

택배 상ㆍ하차, 자동차 조립, 청소년 상담사, 학교 시설관리….

하는 일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10년 전 비정규직 사용을 2년으로 제한하는 비정규직보호법이 도입됐지만 오히려 사내하청,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을 모두 합친 국내 비정규직은 1,100만명으로 늘어났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나선 배경에는 이처럼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지난 16일과 17일 기자는 태안화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하청근로자 고(故) 김용균씨의 빈소가 있는 태안과 서울을 오가며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에 이름을 올린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지회장, 김소연 전 기륭전자 조합원, 김재근 청년 비정규직, 김화민 청소년 상담사, 이태의 학교 시설관리 근로자를 만났다. 김용균씨도 생전 이들과 함께하며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0)’ 선언 후 1년 6개월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건 죽음과 해고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불러왔나.

(김화민) 이달 31일까지만 일하라는 ‘해고통지’를 받았다. 2012년부터 청소년 상담사가 경기 화성 초ㆍ중ㆍ고교에 배치됐는데 경기도교육청이 2016년도부터 학교장 고용 계약직을 전면 금지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때 도교육청은 근무 경력이 2년 이상인 상담사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고, 시청에서 나머지 상담사 40명의 고용을 맡았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자 당장 내년부터 고용하지 않겠다고 한다. 올해 초만해도 정부 정책에 맞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거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날벼락이다.

(김수억) 자동차 사업장은 대표적인 불법파견 사업장이지만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 우리도 올해 연말로 일자리를 잃게 됐다. 한국GM 비정규직의 경우 법원에서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도 최근 또 12월31일자 해고예고통보서가 날아왔다. 대통령은 대선 당시엔 10대 재벌그룹의 불법파견만 바로 잡아도 좋은 일자리 40만개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규직이 된 근로자는 한 명도 없고, 처벌을 받은 불법 파견 사용자도 없다.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은 정규직 전환이 상당히 이뤄졌다고 한다.

(이태의)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의 희망은 ’고문’이 된지 오래다. 일부는 전환 대상에서 제외돼 해고가 됐고, 공공기관 소속의 정규직이 된 건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자회사를 통한 전환이 됐는데, 처우도 그대로고 정부가 예산이나 정원, 신분보장 등을 책임지지 않는다. 무기계약직으로 계약 형태만 바꾼 정규직이라면 이건 사기다.

(김소연) 무기계약직 얘기가 많이 나온 것이 2007년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 때다. 당시에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이라 하기에 ‘그럼 파리도 새’라고 했는데, 지금은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얘기한다. 물론 계약기간의 종료가 없으면 정규직이지만, 문제는 임금 차별은 그대로 뒀다는 거다.

-비정규직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나.

(김재근) 택배회사에서 1년 반 정도를 비정규직으로 상ㆍ하차 업무를 했다. 이름이 알려진 대기업이었고, 현장에서도 ‘우리는 한 팀’이라는 점을 늘 강조하더니 막상 그만둘 땐 그 회사 소속이 아니라 퇴직금을 못 준다 하더라. 음료수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하루 종일 일해도 월급 150만원을 못 받았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래서야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겠나.

(김소연) 과거엔 계약을 해지 당하는 것이 해고였다면, 지금은 해고로 느끼지도 못하는 ‘일상해고’가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있다. 기륭전자에서 해고되고 다른 곳에서 파견으로 일하는 친구가 있다. 파견회사를 통해 취업하고 며칠 일하다가 물량이 없다며 집에 가라고 하곤 몇 주 후에 다시 부른단다.

-그런데도 정작 대중, 특히 청년들로부터 정규직 전환 정책은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김재근) 청년들의 입장에선 ‘이렇게 노력해 정규직으로 입사했는데 왜 내 몫을 가져가냐’는 반감은 있을 수 있다. 개인의 이기심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좁은 문을 청년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의 문제로 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김수억)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재벌들과 청와대에서 맥주오찬을 했으면서 비정규직은 왜 단 한번도 만나지 않나. 김용균씨도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사진으로 찍고 열흘 뒤에 참혹한 사고를 당했다.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이제 실망이 아니라 죽음으로 나타났고, 분노로 바뀌고 있다.

(김화민) 가장인데 길거리로 갑자기 나앉게 됐다. 시교육청에서는 상담사가 더 필요하다는데,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는 비상식적인 일들에 대해 호소하고 싶다.

(이태의) 대통령이 공약했던 내용이 안 지켜지니 만나자는 거다. 같이 힘내서 고칠 수 있는 건지, 아니면 허언이었는지 확인하고 싶다. 헛된 희망이라면 빨리 우리도 정신차려야지 않겠는가.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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