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리 조명이 반짝이는 사진은 연속 촬영한 이미지의 특정 부분만 반복해서 움직이게 하는 ‘시네마그래프(Cinemagraph)’ 기법을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17일 저녁 영세 점포가 밀집한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서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왁자지껄한 연말 분위기는커녕 인적조차 뜸한 골목상권, 힘든 한 해 이 악물고 버틴 치킨집, 족발집 사장님들에겐 세밑마저 이토록 썰렁하다.
자영업자의 깊은 한숨을 뒤로하고 어느 외진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멀리서 반짝이는 녹색 불빛이 보였다. 빛을 따라가 보니 쌈밥집 출입문 앞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그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작은 세탁소 앞에서도 트리를 감싼 꼬마전구가 깜빡깜빡 빛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얼기설기 이어진 골목을 따라 자리 잡은 배달 전문 김밥집과 횟집, 군밤 파는 노점에서도 저마다 소박한 트리 장식을 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썰렁한 골목이 따뜻해졌으면 해서요.” 삭막하고 암울한 현실을 이렇게라도 밝히고 싶었을까, 그들은 점포 앞에 트리를 설치한 이유를 묻자 ‘희망’을 얘기했다. 숭례문 부근에서 군밤 노점을 운영하는 박관호(59)씨는 “가뜩이나 팍팍한 세상이라 지나는 사람들 추위 좀 덜 느끼라고 설치했다”라고 말했다. “트리 장식하면서 웃고 깔깔대고 잠시나마 기분이 좋았다”는 정릉동 분식점 최인태(39) 사장은 “다들 힘들고 한데 함께 힘내보자는 의미로 가게 앞에 세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작은 트리 불빛만으로 환해지기엔 얼굴에 드리워진 근심이 너무 짙다. 매출 감소에 느는 임대료 부담, 재료비 인상 등 상황은 갈수록 어렵다. 그래서인지 반짝이는 트리 조명이 조금이나마 매출 증가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정릉시장에서 쌈밥집을 운영하는 박선희(46)씨는 “아무리 불경기라지만 이번 달은 최악이다. 버는 만큼 나가는 것 같다. 그래도 어두운 골목에 이렇게 밝게 해 두면 많이들 보고 찾아오시지 않을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조그만 트리 장식 하나도 옆 점포에 실례가 될까 조심스럽다.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액세서리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원래는 화려하게 꾸미고 싶었는데 주변 가게들이 불경기 때문에 트리를 안 해서 눈치 보다가 제일 작은 걸로 세웠다. 곧 크리스마스인데 그냥 넘기기도 그렇고…”라고 말했다.
“그래도 내년 연말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많이 났으면 좋겠어요.” 쌈밥집 박 사장의 희망은 실현될 수 있을까. 이날 정부가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지원 대책이 포함된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지만 자영업자들은 그리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군밤 노점 박 사장은 “정부 혼자서 경제를 살릴 수 있겠나? 서민 신경 쓰는 게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자체 진단했다. 분식점 최 사장도 정부 정책에 믿음이 안 간다고 말했다. “이번 정권이나 다음 정권이나 다다음 정권이나 다 안 믿는다. 와 닿는 정책을 시행한 적이 없지 않나. 내년부터 소상공인 정책을 시행한다고는 하는데… 글쎄요.”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김주성기자 poem@hankookilbo.com
김주영기자 will@hankookilbo.com
김혜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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