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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故 김용균과 故 노회찬

입력
2018.12.19 18:30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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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내가 김용균입니다'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악법 철폐, 불법파견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 직접고용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내가 김용균입니다'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악법 철폐, 불법파견책임자 처벌, 정규직 전환 직접고용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또 다시 꽃다운 나이의 청년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2년 반 전 구의역 사고 추모 포스트잇에 “사람 잃고 대책 마련하는 방식을 버리겠다”던, “사고 없는 사회 만들겠다”던 정치인들의 다짐과 약속은 그저 헛구호일 뿐이었다.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으로 불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2년 동안 묵혀두다 또다시 소중한 생명을 잃고서야 부랴부랴 다시 만지작거리는 국회다. 24세의 젊은 생명을 집어삼킨 컨베이어벨트만 멈춘 채,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컨베이어벨트를 여전히 돌리고 있는 태안화력발전소의 담담함에는 비정함까지 느껴진다. ‘사람이 먼저’라고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의 민낯에 모골이 송연하다. 정치권의 직무유기와 기업의 이익 우선주의, 정부의 방관은 한 청년이 컵라면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다 죽어나가는, 이 비통한 사건의 공범이다.

고(故) 김용균씨. 그의 참담한 죽음을 접하고 떠오른 사람은 고인이 된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였다. 누구보다 약자 편에 섰던 정치인 노회찬은 2년여 전 구의역에서 승강장 정비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은 김모(당시 19)군을 추모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OO아 편히 쉬렴 면목이 없다.” 여느 정치인처럼 재발방지에 대한 다짐이나 약속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회찬은 이듬해 4월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발의하면서 산업현장, 일자리에서의 황망한 죽음을 예방하려 했다.

근 2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을 꺼내 읽으니 “권력 앞에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강직한 사람. 노동자, 소수자, 약자를 사랑했던 따뜻한 사람”(노회찬 추모영상 발췌)의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그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안이유로 “대부분의 대형재해 사건은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와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예방을 위해서는 기업 등이 조직적ㆍ제도적으로 철저한 안전관리를 하도록 유도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회찬은 재해 사건 상당수에 대한 처벌이 일선 현장 노동자나 중간관리자에게 가벼운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인명피해에도 법인에 낮은 수준의 벌금만 부과하고 있는 현행법이 경영자가 재해의 위험을 평가절하해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재해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고 봤다. 실제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기업 ‘청해진해운’은 선박기름을 유출한 과실만 인정 받아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은 것이 처벌의 전부였다. ‘위험의 외주화’ 논란을 촉발시킨 ‘구의역 사고’도 2년이 흐른 지난 6월 1심에서 정비용역업체 대표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원청업체인 서울메트로 전 대표가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는 것에 그쳤다.

노회찬은 경영자의 책임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비통하고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안에 안전ㆍ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발생하게 한 법인, 사업주, 경영책임자 및 공무원까지도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배경이다. ‘경영자들에게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사고가 나지 않게 신경 쓰라’는 엄포였지만, 행간에는 ‘살기 위해 일하는 일터에서 죽어나가는 일은 없게 해달라’는 약자들의 호소로 읽혔다. 고 김용균씨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전하고 싶었던 말도 이런 내용이었을 터다.

“용균이의 죽음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환원할 수 있는 죽음이기를 바랍니다.” 김씨 유족이 앞서 18일 국회 정론관에서 ‘김용균 법’ 통과를 호소하면서 한 말이다. 그의 죽음으로 노회찬 법안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과 함께 ‘김용균 법’으로 부활했다.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이런 억울한 죽음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면목없는’ 짓이 더 이상 이어져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두 고인(故人)에게 진 빚이 크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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