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명절 하면 우린 으레 음력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절기를 말할 때 사용하는 입춘부터 대한까지의 24절기는 의외로 양력이다. 음력만 가지고는 농사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양력을 넣어 이를 보충했기 때문이다.
24절기 중 명절의 위상을 가지는 것은 단연 동지와 입춘이다. 동지는 낮이 가장 짧은 날이고,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때다. 동지와 입춘은 양력이다 보니, 동지는 매년 12월 22~23일에 들고, 입춘은 2월 4일 정도가 된다.
동지에 밤이 가장 길다는 의미는 이날부터 낮이 길어진다는 의미다. 즉 태양의 시작인 셈이다. 해서 동지에는 첫 시작의 상징이 존재한다. 주자가 예법을 정리한 ‘주자가례’에는 동지에 시조신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되어 있다. 또 공자가 가장 좋아했던 주(周)나라는 동지를 설날로 삼아 새해를 시작했다. 이런 주나라의 영향 때문에 동지를 작은 설이라는 의미의 아세(亞歲)라고 했고,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게 된다. 즉 동지 팥죽은 과거에는 설날의 떡국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양력 달력을 쓰므로 동지는 달력에서 붙박이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음력인 추석이나 설이 매년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예전의 음력 달력에서는 동지가 그랬었다. 해서 음력 11월 10일 사이에 동지가 들면 애동지, 11~20일 사이에 들면 중동지, 21~30일 사이에 들면 노동지라고 했었다. 아이들은 빨리 나이 먹기를 원하고, 노인들은 늦게 나이 들기를 바라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동지 팥죽에는 새알심을 넣는데, 이는 하얗고 둥근 모습을 통해 태양의 부활을 상징한다. 또 팥은 ‘붉은색=불’의 의미로 모든 삿됨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를 가진다. 이외에도 지금은 살펴보기 힘든 풍속에 동지 주머니를 나눠주는 것도 있었다. 과거 설날에 복조리를 걸어두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처럼 복주머니를 통해서 복 받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왕조 국가 시절에는 동지가 되면 군주가 달력을 나눠준다. 시간의 지배자라는 상징은 최고의 군주만이 가지는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사찰에서는 동지에 달력을 나눠준다. 이는 붓다를 중심으로 새로운 1년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다. 그런데 음력에는 동지가 11월이 되기 때문에 이때 달력을 나눠줘도 무방하지만, 동지가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요즘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해서 나는 동지 때 달력을 나눠주면, 이미 다른 달력이 다 걸려 있으니 미리 나눠드리라고 얘기하곤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크리스마스 역시 동지라는 것이다. 예수와 관련된 역사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후일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인되면서 예수의 탄생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때 로마에서도 중요한 명절이었던 동지에 내포된 ‘태양의 부활’이라는 의미가 차용된다. 즉 크리스마스 역시 또 다른 모습의 동지인 셈이다. 그런데 날짜에 차이가 있는 것은 동아시아와 로마의 지구상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농담으로 한국인은 1년에 네 살씩 먹는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 동지에 한 살 먹고 로마 동지에 한 살, 이렇게 연말에만 두 살을 먹고 다시금 신정과 구정에 한 살씩 더 먹으니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인이야말로 초고령 장수민족인 셈이다.
오늘날 동지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주체는 아이러니하게도 불교다. 불교는 2,000년을 동아시아에서 함께 하며 전통문화를 존중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지는 비단 불교만의 것은 아니다. 동지는 우리 모두가 첫 단추를 새로 끼우는 경건하고 복된 날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크리스마스 역시 동지라는 점에서 본다면, 동지야말로 종교와 전통문화가 화합하는 최고의 명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않을까!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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