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에볼라 공포가 번졌던 2015년 인류와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주도했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아프리카 일원에서 ‘이집트 과일박쥐’ 이동경로 추적 연구에 착수했다. 에볼라보다 더 치명적인 ‘마버그 바이러스’ 창궐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바이러스를 옮기는 박쥐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나 과일나무 군락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바이러스 감염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CDC는 최근 아프리카 중부 우간다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 마라마감보 숲의 박쥐 동굴에 바이러스 분야 연구진을 투입했다. 이 동굴에 서식하는 약 5만마리 이집트과일박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연구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생포한 20마리 박쥐의 날개에 대당 1,000달러의 GPS수신기를 부착했다. 수신기 부착 비용은 아프리카 일대에 병력을 파견한 미국 국방부가 부담했다.
CDC의 연구 결과, 이집트과일박쥐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광범위한 거리를 이동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한 박쥐의 경우 하룻밤에 3,000여곳(포인트)을 이동했다는 결과가 나왔고, 또 다른 개체의 하룻밤 이동거리는 약 25㎞에 달했다. WP는 “이는 박쥐들이 마을과 숲 사이를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감염 지역의 확대 가능성을 추론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1967년 독일 마버그와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발견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발열, 구토 및 장기 출혈을 일으키며 치사율은 90%에 가깝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증상이 비슷하지만, 치사율은 더 높은 것이다. 아직 대규모 감염이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CDC가 선제 대응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감염 경로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박쥐나 원숭이에 오염된 과일에 사람이 노출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첫 감염자가 확인된 이래 300여명 사망자가 발생했다. 아직 치료약은 없지만 미국 CDC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기적적으로 살아난 한 여성을 통해 백신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편 미국 CDC 연구는 우간다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서도 이뤄졌다.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은 박쥐 서식지이기도 하지만, 90여종 포유류가 서식하는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관광객으로부터의 외화 수입이 정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우간다 정부로서도 이 바이러스를 막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4년 이후 잠잠하던 바이러스 사망 사례가 지난해 3건이나 발생하면서 일대 관광산업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다. 짭짤한 수입이 보장됐던 ‘박쥐동굴’ 체험 코스가 폐지되고, 관광객은 동굴에서 약 60m 거리의 유리 전망대에서만 박쥐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CDC 연구 지원과 함께 우간다 보건당국은 최근 인근 150여개 마을 지도자를 모아 마버그 바이러스의 위험성과 확산 방지에 대한 교육도 실시했다. 바이러스 감염 경로인 오염된 과일 섭취 금지 교육과 함께 최소한 과일을 씻어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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