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서울시 전체의 86.8%인 246만 세대는 공동주택에 거주한다. 이 공동주택내에선 아이 돌봄이나 에너지와 쓰레기, 환경, 먹거리, 건강 등을 포함한 생활 문제도 적지 않다. 만약 이런 문제를 공동주택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공동주택 ‘같이살림’ 프로젝트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공동주택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생활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골자다.
올해 8월 ‘공동주택 같이살림 프로젝트 시범사업’에 착수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는 참여 공동주택 단지를 모집했다. 9월 1차 주민 워크숍을 통해 각 단지 내 공통적 생활문제에 대한 의견을 모은 결과 아이 돌봄, 안심·건강 먹거리, 건강증진, 에너지 절감 등이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10월 2차 주민 워크숍에서 제기된 생활문제를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고, 참여 단지별로 전문 역량을 갖춘 코디네이터를 배치해 프로젝트 실행 계획도 수립했다. 이번 시범사업엔 모두 9개 공동주택 단지의 참여했고,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이 가운데 동대문구 전농동 A아파트의 ‘청소년 안심 먹거리 제공’ 프로젝트는 주민들로부터 호평 받는 대표적인 공동주택 ‘같이살림’ 사례다. 이 프로젝트는 이 아파트 단지 근처에 아이들이 먹을 만한 건강 간식 판매점이 드물다는 데서 출발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이 아파트 주민들은 학원에 아이들에게 간식을 챙겨줄 여력이 없었고 인근 지역에도 건강한 먹거리가 부족했다. 주민 회의 결과, 경력 단절 여성들을 위주로 한 푸드 플랫폼 ‘김이백’과 청정 재료로 한식을 만드는 ‘소녀방앗간’이 함께 아이들을 위한 안심 먹거리 사업을 진행키로 했다.
반응도 긍정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소문은 퍼졌고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이 곳에게 간식을 맛 본 신채민(12) 학생은 “마카롱이나 와플, 치킨 같은 간식이 특히 맛이 있었다”며 “아파트에서 이런 행사를 자주 열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파트 주민들의 만족도 높다. 김종석 A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은 “우리 아파트는 700세대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30~40대 젊은 엄마들을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잘 형성돼 새로운 프로젝트나 사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며 “전농동 전체 주민 중 85%가 아파트에 사는데,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다른 단지를 비롯해 동, 구 전체로 사업이 확대돼 수익이 나는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달 1일 마포구 아현동의 B아파트에서 진행된 ‘반려나무 나눔 입양 행사’ 역시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추진 중인 공동주택 ‘같이살림’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였다. 이 아파트의 주민 워크숍에서 나왔던 ‘반려동물을 통한 노인돌봄과 비산먼지(공사장에서 대기 중으로 직접 배출되는 먼지)’ 과제 해결을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재개발임대단지로 50세 이상 주민이 전체의 55%를 차지, 노인세대 건강과 돌봄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아파트 주변의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날아드는 비산먼지로 불편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B아파트는 주민들과의 토론 끝에 숲을 조성하는 소셜벤처 ‘트리플래닛’ 및 기후변화대응에 연관된 ‘십년후연구소’와 손잡고 문제 해결에 나섰다. 트리플래닛은 직접 농장에서 키운 어린 주목 240그루를 주민들에게 배분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주목은 조경수로도 인기가 높은 품종이다. 십년연구소에선 적정기술을 활용한 DIY 은하수 공기청정기를 주민들과 함께 만들었다.
주민들도 긍정적이다. 이날 준비한 주목 240그루가 1시간만에 동이 났다. 평소에도 주민 대상 행사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한다는 입주자 하수연 씨는 “받은 나무가 정말 예쁘다”며 “공기청정기 만들기 행사도 신청했고, 앞으로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시간이 날 때마다 참여하고 싶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이런 반응에 힘입어 올해 시범 사업으로 출발한 ‘같이살림’ 프로젝트를 향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인성환 서울시사회적지원센터 지역지원팀장은 “서울의 사회적경제는 많이 성장했지만 시민 체감도는 이에 미치지 못해서 사회적경제가 시민들이 삶 속에서 겪는 구체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면서 “특히 임대아파트는 분양아파트와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기존 사회적경제와 연계하여 커뮤니티를 강화하고 단지 내 일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4,300여개의 서울시 공동주택 단지 가운데 10~20%에서 삶의 방식이 변화한다면 의미부여는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안 팀장은 “처음에는 사회적경제 기업이 진입해 생활문제를 함께 해결해보고, 이후에는 주민들이 그 방식을 이어받아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추가로 필요한 서비스는 스스로 발굴하는 등 단지가 사회적경제로 선순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