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7일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징계에 넘겨진 법관 13명 중 8명에게 징계처분을 내렸다.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3명은 정직,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등 4명은 감봉, 판사 1명은 견책 처분됐으며, 나머지 5명은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 양승태 사법부 수뇌부의 손발 노릇을 하며 사법신뢰를 무너뜨린 이들에 대한 문책치고는 너무 가볍다. 법원의 사법농단 반성과 재발 방지 의지에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는 징계 청구 때부터 우려했던 바다.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징계절차에 회부했다”고 말했다. 조직적으로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고 사법정의를 훼손한 판사들 징계는 당연한 조치인데 용단을 내린 것처럼 포장했다. 게다가 징계 회부에서 결정까지 6개월 가까이 소요됐다. 헌법과 법률로 신분을 보장받는 법관에 대한 징계 절차는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이 정도면 ‘고의 지연’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징계가 확정되면 법관 탄핵 논의에 속도가 붙을까 두려워 징계 절차를 미뤘다는 지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징계의 실효성도 의문시된다. 법관에 대한 징계 조치는 정직ㆍ감봉ㆍ견책뿐이고, 정직에 처한다 해도 기한은 최대 1년에 불과하다. 그나마 나온 13명의 징계 중 가장 높은 수위가 정직 6개월에 그쳤다. 양 대법원장 때 모 부장판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무죄 1심 판결을 비판한 글을 올렸다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 것에 비하면 얼마나 ‘솜방망이 징계’인지 드러난다. 판사 뒷조사 문건 작성이 확인됐거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 방안을 논의한 법관들에게 무혐의 결정을 내린 데 이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과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제 국회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소추 대상자 선정 작업을 마치고 조만간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법관 탄핵에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하고 특별재판부 추진에 찬성했던 여야 4당이 합의하면 의결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다.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을 그냥 두고서는 사법 적폐 청산은 요원하다. 국회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신속히 탄핵절차를 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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