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영국 ‘요크셔 야생공원’에 다녀왔다. 이곳은 원래 말, 라쿤 등을 만지고 먹이를 주는 ‘페팅주’(Petting zoo)였으나, 요크셔 야생공원 설립자들이 매입해 야생동물 보전과 복지에 중점을 둔 동물원으로 바꿨다. 특히 열악한 환경에 있는 동물들을 구조해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에는 루마니아 동물원의 좁은 공간에 살던 사자 13마리를 데려왔다. 2014년부터는 북극곰을 구조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곳에 간 이유는 한국 동물원의 마지막 북극곰 ‘통키’가 여생을 보낼 곳을 보기 위해서였다. 에버랜드는 올해 6월 통키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요크셔 야생공원으로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큰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니 드넓은 땅이 펼쳐져 있었다. 북극 툰드라 서식지를 본따 만든 방사장 면적은 3,900㎡(1만2,000평)이나 됐다. 지금은 유럽과 러시아 동물원에서 온 수컷 북극곰 4마리가 산다. 두 마리 북극곰이 8m 깊이의 자연 연못에서 헤엄치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어서 물에서 나오더니 풀에 몸을 비볐다.
사육사에게 통키를 아느냐고 물었다. 11월에 한국에서 오기로 했다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만 해도 통키는 건강했다. 그런데 영국에 가기 한 달 전인 10월, 24세의 나이로 갑자기 죽었다. 사망 원인은 ‘늙어서’였다.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실시했다는 조직병리검사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얼마 전에는 멕시코 동물원의 북극곰 ‘유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픽도 통키와 마찬가지로 좁은 곳에서 오랜 시간을 살았고 요크셔 야생공원으로 가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2월에 그 결정은 취소됐고 결국 11월에 죽었다. 이 동물원 역시 사망 원인을 ‘늙어서’라고 밝혔다. 동물보호단체는 부검을 제안했지만 동물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부적절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못 받고 갇혀있는 동물들이 너무 많다. 서식지가 파괴되고 생존능력을 잃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해도 의지만 있다면 그런 동물들에게 충분히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예산, 시간, 인력이 부족하다면 동물을 다른 좋은 곳으로 보낼 결정을 속히 내려야 한다. 미루는 사이, 관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동물들은 ‘이유를 모르고’ 죽어간다. 연말에 쇼핑몰 여기저기 놓여있는 북극곰 인형을 보니 마음이 즐겁지만은 않다.
글ㆍ사진=양효진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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