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강 국면이라는 경기판단 용어를 사용하기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하강 국면 여부의 판단은 조금 더 있어야 될 것 같다.”(11월30일)
“성장률 전망치가 다소 하향조정 됐지만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10월18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경기 진단이다. 정부마저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대 중반(2.6~2.7%)으로 대폭 낮추면서 우리 경제가 하강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판단이 대세가 된 가운데도 유독 한국은행만은 시장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은은 왜 경기 하강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것일까.
18일 한은과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 국면 판단에 활용되는 양대 지표는 경기종합지수(특히 경기동행지수)와 성장률(GDP 증가율)이다. 국내의 경우 경기동행지수는 통계청이 월별로, 성장률은 한은이 분기별로 각각 작성한다.
둘 중 더 많이 활용되는 지표는 경기동행지수다. 매달 산출되기 때문에 보다 신속한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기동행지수(순환변동치 기준)는 지난 4월부터 최근 통계치인 10월까지 7개월 연속 하락했다. 통상 경기동행지수가 6개월 이상 내리면 시장은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는 신호로 여기고 통계청은 경기 전환 시점을 확정하기 위한 분석에 들어간다. 민간 경제기관 중 선제적으로 경기 하강 돌입을 선언한 현대경제연구원이나, 지난달부터 경기가 둔화됐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요 판단 근거로 제시한 지표도 경기동행지수다.
반면 한은은 경기 상황 판단 시 성장률, 그 중에서도 실제 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인 GDP갭을 중시한다. 잠재성장률은 우리 경제가 노동, 자본 등 자원을 최대한 활용했을 때 유지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이론적으로는 GDP갭이 마이너스(-), 즉 성장률이 잠재 수준에 못 미치는 상태를 불경기, 반대로 GDP갭이 플러스(+)인 상태를 호경기로 판단한다. 한은은 GDP갭의 부호뿐 아니라 변동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GDP갭률(GDP갭을 잠재성장률로 나눈 값)을 함께 본다. 예컨대 GDP갭이 계속 마이너스라도 갭률이 갈수록 0에 가까워진다면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지난달 한은 자료에 따르면 GDP갭률은 2012년 이래 3개 반기(半期)를 빼고 줄곧 마이너스다. 언뜻 봐선 우리 경제가 불경기를 면치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은은 GDP갭률의 마이너스 폭이 감소하는 추세란 점을 들어 속단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실제 2015년 상반기 0.5%를 넘었던 마이너스 폭은 올해 상반기엔 0.1%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었다.
경기 판단 보류의 또 다른 이유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한은은 저출산ㆍ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이 우리 경제의 잠재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며 현행 2.8~2.9%인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하향 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잠재성장률을 적용할 경우 GDP갭률은 보다 0에 가깝게 돼 경기 국면 식별이 더 모호해진다.
한은이 경기종합지수보다 자체 생산 지표인 GDP를 더욱 신뢰한다는 설명도 나온다. 실제 한은 내부에선 경기종합지수가 경제구조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적잖다.
그러나 일각에선 한은이 내년 금리인상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일부러 경기 하강 국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란 시각도 없잖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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