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4월 밤 10시 30분경, 경기도 한 중학교 축구부 숙소에서 남자 선수들 간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 3명 중 1명이 피해 선수의 바지를 벗겨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입을 틀어막았고 나머지 두 명이 성기를 잡고 흔들었다. 피해 학생 아버지는 약 한 달 뒤 아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이성이 아닌 동성 간, 성인이 아닌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이들끼리 장난치다 그런 것 아니냐” “이게 무슨 큰 문제냐”는 말들이 피해자 가족에게 비수처럼 꽂혔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들은 차례로 전학을 갔고 축구부는 얼마 뒤 해체됐다.
가해학생 3명 중 2명은 지금도 축구를 한다. 당시 감독이었던 지도자도 다른 클럽 팀에서 여전히 제자들을 가르친다. 반면 피해 선수는 축구를 그만뒀다. 피해 학생 어머니는 “아들이 ‘나쁜 짓을 한 애들은 계속 축구하고 나는 못 하는 게 억울하다’고 말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고 울먹였다.
가해학생 3명은 강제추행으로 소년재판을 받았다. 이후 피해 학생 부모가 대한체육회와 축구협회에 민원을 제기해 축구협회는 지난 6월과 9월, 공정위원회(징계위)를 열어 해당 지도자에게 경고, 가해 학생 3명 중 1명에게 1년 자격정지를 내렸다. 나머지 2명은 사건 발생 당시 만 나이가 14세를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면했다. 축구협회에는 ‘만 14세 미만자의 행위(경기 중 위반, 폭력과 폭언, 대회 규정 위반 등은 제외)는 징계하지 아니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축구협회에만 있고 체육회에는 없는 규정이다.
한 변호사는 “형사상 미성년자여도 징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축구협회 규정대로면 중학교 1학년생은 아무리 큰 성범죄를 저질러도 징계조차 못한다는 말인데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체육회 공정체육실 관계자도 “각 종목 특성에 따라 징계 규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이건(14세 미만 징계 제외 규정)종목 특성과 관계없는 것 같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체육회에 따르면 타 종목에서는 13세 선수가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
축구협회와 체육회 규정이 다른 탓에 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가해학생 부모는 축구협회 징계가 과하다는 이유로, 반대로 피해 학생 부모는 징계가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상급기관인체육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을 청구하는 순간 징계 효력이 일시 정지된다. 그러나 체육회는 ‘스포츠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다른 규정이나 관례에도 불구하고 재심의 기간에도 징계 효력은 정지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축구협회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1년 자격정지를 받은 가해학생은 재심 기간인 지난 10월 중등리그 몇 경기에 아무 제재 없이 출전했다. 이에 대해 체육회는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하지만 축구협회는 “우리 규정에 없으니 문제되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체육회의 회원종목단체 규정에는 ‘회원종목단체가 체육회의 정관, 규정 및 기타 규정을 준용할 수 없거나 해석상 불분명한 사항은 체육회가 정한 바에 따른다’고 분명 명시돼 있다. 이 변호사는 “축구협회가 상급 기관인 체육회 규정을 따라야 하는 사안이다. 축구협회는 규모가 커서 그런지 체육회와 규정이 상충되는 일이 발생할 때 자기네가 우선이라 우기는 일이 종종 있다”고 꼬집었다.
축구협회의 한 해 예산은 1,000억원에 달한다. 축구협회는 체육회 산하 60여 개 가맹단체 가운데 다른 종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산 규모가 크고 재정 자립도가 높다. 축구대표팀이 국내에서 가장 인기 좋고 영향력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축구협회가 체육회가 정한 규정을 벗어나 ‘무소불위’처럼 군림해도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체육회는 19일 공정위를 열어 이 사안들을 다룰 예정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서진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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