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더 레코드·4]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높이뛰기에서 은메달(2m28㎝)을 따내며 한국 육상에 큰 희망을 선사한 우상혁(22)은 아직 넘어야 할 높은 꿈들이 많다. 21년 묵은 이진택(46)의 한국신기록(2m34㎝)도 넘어서야 하고, 한국인 최초 올림픽 높이뛰기 메달리스트라는 꿈도 이뤄내야 한다.
지난 13일 충남 천안시의 한 개인 훈련장에서 만난 우상혁이 비시즌임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훈련에 매진하는 이유다. 내년 세계선수권대회까지는 아직 10개월이나 남았음에도 “준비할 것이 많다”며 바벨을 번쩍 들었다.
그는 최근 체형을 바꾸는 초강수를 뒀다. 현재 체형(1m88㎝ㆍ80㎏)보다 근육량을 늘리기로 한 것. 높이뛰기 선수는 도약력과 공중 동작의 힘을 증가시켜 바를 넘는 ‘파워형’과 몸을 가볍게 해 유연성을 위주로 한 ‘기술형’으로 나뉜다. 우상혁은 “지금까지 내 스타일은 파워형도 기술형도 아닌 어정쩡한 스타일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롤모델인 스테판 홀름(42ㆍ스웨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의 ‘파워형’으로 기법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스테판 홀름은 181㎝의 단신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이어 2m40㎝(2005년)를 기록하는 등 2000년대 높이뛰기 일인자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1m93㎝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이로운 기록이다. 우상혁은 “나도 높이뛰기 선수로는 키가 작은데, 홀름 위원은 더 작다”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우상혁이 높이뛰기를 시작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뛰는 걸 좋아하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이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자, 아버지는 당장 대전시교육청을 찾아가 “좋은 코치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당시 체육 담당 장학사는 “여기까지 찾아온 부모님은 처음”이라고 놀라며 윤종형 감독(현 높이뛰기 국가대표 감독)을 소개해줬다. 그때부터 우상혁과 윤 감독의 끈끈한 ‘13년 동거’가 시작됐다.
1년 만인 2007년 전국대회에서 자기 키보다 높은 1m50㎝를 뛰어넘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고 2때인 2013년 세계청소년육상대회 2m20㎝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4년 세계 주니어 대회에서는 2m24㎝를 넘었다. 우상혁은 감독의 공으로 돌렸다. “기록 1㎝ 더 올리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윤 감독과 머리 맞대고 밤새 고민하고 훈련한 결과였다.”
그는 가장 큰 무기로 젊음과 낙천적인 성격을 꼽았다. 만 스물에 나간 일본 오사카 국제육상선수권대회(2016년 7월)에서 자신의 종전 최고 기록보다 4㎝나 더 뛴 2m29로 우승을 차지하며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획득했다. 우상혁은 “큰 대회일수록, 관중이 많을수록 잘하는 스타일”이라며 웃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상혁은 결선 진출자 13명 가운데 두 번째로 어렸지만, 관중의 박수를 적극 유도하는가 하면 바를 넘은 뒤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등 시종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우상혁은 ‘짝발’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 영향으로 오른발이 1㎝가량 작다. 높이뛰기 선수로 치명적인 요소였지만, 구름 발을 왼발로 바꾼 결단과 꾸준한 노력으로 결국 ‘16년 만의 아시안게임 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제 도쿄 올림픽을 정조준한 그는 이제 자신의 경기 스타일까지 과감히 바꾸며 새로운 꿈에 도전한다.
우상혁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역시 아시아기록(2m43㎝) 보유자 무타즈 에사 바르심(27ㆍ카타르)이다. 바르심은 올해도 도하 육상대회에서 2m40㎝를 넘으며 세계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다만 2014년을 정점으로 전성기를 지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감독은 “높이뛰기의 경우 24~26세에 가장 좋은 성적을 내는데, 상혁이는 나이에 맞게 조금씩 ‘최고 목표’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우상혁과 비슷한 나이로는 다닐 리센코(21ㆍ러시아)와 드미트리 나보카우(22ㆍ벨라루스)가 눈에 띈다. 올해 2m30 중후반대를 넘었다. 아시아에서는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왕위(27ㆍ중국ㆍ2m32㎝)가 있다.
우상혁은 “내년 9월 카타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따 예열한 뒤 도쿄 올림픽까지 쭉 직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내년까지 자신의 최고 기록(비공식 2m33㎝)만 유지하면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는 2m30㎝대 중후반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청사진이다. “도쿄는 바로 옆이라 다른 나라 선수보다 내가 유리하다. 개인적으로 일본에서의 기록도 유독 좋았다. 전혀 겁 먹을 필요가 없다.”
천안=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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