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급반전하자 유엔사령부는 원산 이북 미군과 한국군의 해상 철수를 결정했다. 장진호 전투의 주역 미 해병1사단과 에드워드 알몬드(Edward Almond, 1892~1979) 소장 휘하의 미 보병 10군단, 김백일(1917~1951) 소장이 지휘한 국군 1군단 병력 10만 명과 1만7,000여 대의 차량, 군수품 35만 톤이 함경남도 흥남항에 집결했다. 군함 상선 등 가용 선박 190여 척이 동원된 ‘흥남 철수’는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 동안 이어졌다. 북 동해안 인근 지역 피난민 20만 여 명도 부두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 10만여 명이 승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전시 작전선박에 민간인을 태우는 것은 미군 규정을 위반하는 거였고, 사령부의 철수작전 에도 피난민 수송 계획은 없었다. 피난민과 함께 철수한다는 결정을 내린 이는 철수작전의 총지휘관이던 알몬드 소장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에 잠깐 등장하는 것처럼, 군단 민사고문이던 의사 현봉학과 김백일 소장이 그를 설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양차대전에 참전, 은성무공훈장과 퍼플하트를 받은 알몬드는 한국전쟁의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진격 명령을 좋아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도 공세를 펴는 게 단점으로 평가 받는 알몬드는 초기 중공군의 위세를 오판해 전황을 어렵게 했다는 평도 듣는다. 그는 53년 1월 중장으로 예편, 한 보험회사 경영자로 일했다.
군 수송선으로 동원된 7,600톤 급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1914~2001)는 12월 23일부터 배에 실린 다량의 항공유 등 군수품 일체를 내리게 한 뒤 피난민 1만4,000여 명을 태웠다. 배는 28시간 항해 끝에 부산을 거쳐 크리스마스인 25일(미국시간) 거제에 닿았다. 승선자 중 단 한 명도 숨지지 않았고, 오히려 5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한국전쟁 판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연출한 그는 54년 뉴저지 주의 성바오로 수도원에 들어 베네딕토회의 수도자(세례명 Marinus)로 남은 생을 보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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