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에 모디 측근 다스 임명...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우려
인도중앙은행(RBI) 총재였던 우르지트 파텔이 지난주 갑작스레 사임했다. “개인 사유”를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로는 경기 부양을 추구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거품붕괴를 우려하는 인도 경제 관료 사이의 갈등이 증폭돼 발생한 사건이라는 분석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파텔이 빠진 자리에 친(親)모디 성향 관료가 자리잡았다는 사실도 이런 의혹을 증폭시켰다.
원래대로라면 내년 9월에나 임기(3년)가 종료되는 파텔 총재는 10일(현지시간) 개인적인 이유로 사임한다고 밝혔다. 파텔 총재와 모디 총리는 겉으론 우호적으로 작별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후임에 인도 재정부 고위 관료 출신으로 2016년 모디 총리 화폐 개혁을 주도한 샤크티칸타 다스가 임명된 것을 두고 사실상 쫓겨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텔의 전임자이자 세계적 경제학자인 라구람 라잔은 인도 일간지 이코노믹타임스에 “파텔의 사임은 (정부로부터) 강요된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모디 총리와 중앙은행 사이의 갈등이 파텔 총재 사임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제 정책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모디 정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적극적인 단기 부양책을 펼치고 싶어하는 반면 중앙은행은 향후 예상되는 금융위기를 고려해 악성 대출을 규제하고 경기 거품을 방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모디 정부는 중앙은행이 보유한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하고 대출 규제도 완화하길 바랐으나, 파텔 전 총재 주도로 중앙은행이 응하지 않자 사용된 전례가 없는 특별 권한 발동까지 검토했다. 정부가 RBI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바꾸려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집권당 인도인민당(BJP)은 최근 마디아프라데시ㆍ라자스탄ㆍ차티스가르주 총선에서 주 의회를 야당 인도국민회의(INC)에 내줬다. 연초 동부 주에서 집권당이 연전연승하던 분위기가 내년 상반기 총선을 앞두고 정반대로 뒤집힌 것이다. 빈곤 노동자와 농민을 중심으로 모디 총리가 약속한 일자리와 소득 상승이 나타나지 않자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심판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도 경제는 최근 소비와 제조 부문에서 성장세를 보였지만, 올 들어 미국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초래된 인도 화폐 루피화의 약세로 기업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모디 총리 입장에서는 경기부양을 서두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 전문가들은 인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나아가 인도의 경제정책 노선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캐나다 칼컨대의 비베크 디헤지아 경제학 교수는 “파텔의 사퇴는 인도가 1991년부터 이어 온 자유주의 시장경제 노선에서 벗어나 경제적 토착주의로 회귀하는 신호”라며 “합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펼치겠다는 면피조차 사라졌다. 포퓰리즘과 대규모 지출, ‘인도식 경제’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