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재보험(이하 코리안리)이 항공보험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20여 년간 경쟁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차단하다가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76억원을 부과 받았다.
17일 공정위에 따르면 코리안리는 1999년 4월부터 지난달까지 국내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시장에서 모든 손해보험사가 자사와만 거래하도록 하는 등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청과 소방청 등 정부 기관은 보유하고 있는 산불진화 헬기나 소형기 등이 사고 날 때에 대비해 국내 손해보험사가 제공하는 보험(2017년 기준 시장규모 290억원)에 가입한다. 이 분야는 사고가 나면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보험료가 크기 때문에 손보사 입장에선 재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다. 재보험은 보험사를 위한 보험으로, 사전에 가입하면 사고가 났을 때 손보사는 재보험사에서 보험금 일부를 받아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모든 국내 손보사와 △자사가 책정한 보험요율(사고 시 받는 보험금액 대비 납부 보험료)로 보험계약을 체결하고 △그 계약물량 전부를 자신이 제공하는 재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를 어길 경우 불이익을 가했다. 가령 2013년 A손보사가 해외 재보험사가 산정한 보험요율로 관용헬기보험 입찰에 참여하자, 코리안리는 A사에 “향후 입찰에서 보험요율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코리안리는 최근 5개년(2013~2017년) 국내 일반항공보험 시장에서 평균 8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잠재적 경쟁 재보험사의 시장 진입 가능성이 봉쇄돼 경쟁 수준보다 높은 보험요율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만약 손보사들이 스위스리나 뮌헨리 등 해외 재보험사에 보험요율을 의뢰해 입찰에 참여했다면 가격경쟁이 발생해 정부기관이 내는 보험료가 낮아졌을 텐데, 코리안리의 독점적 지위 남용으로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장기간 폐쇄적인 거래구조를 유지해 최종 소비자의 희생 하에 이윤을 누린 독점사업자의 남용행위를 제재한 것”이라며 “그 동안 코리안리의 보험료 및 조건이 일률 적용됐던 국내 일반항공보험 시장에 경쟁이 도입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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