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협상 급할 게 없다” 北 “시간이 美 어리석음 깨우칠 것”
트럼프 美서 정치적 위기, 김정은은 경제 성과 없어 초조
‘네가 먼저 움직여라.’
비핵화와 안전보장을 어떤 식으로 교환할지를 놓고 줄다리기 중인 북한과 미국의 기세가 팽팽하다. 각기 양측이, 성과 부진에 따른 당장의 손해를 감내하며 인내심을 겨루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대북 협상과 관련해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트위터에 “많은 사람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봐 왔는데 나는 항상 우리는 급할 게 없다고 대답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정은은 그의 주민을 위해 기회를 잘 활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짐짓 느긋한 체한 것이다. ‘김 위원장’(Chairman Kim)이라는 호칭을 쓰던 평소와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김정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회를 잡으려면 서두르라고 압박하는 투다.
미측의 장기전(戰) 시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9월 26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주재 뒤 기자회견에서 “북한 문제 대처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뒤부터다. 지난달 25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내할 준비가 돼 있다”며 대북 제재가 지속될 거라고 북한에 거듭 경고했다.
만나주지 않겠다면 구태여 안 만나도 된다는 게 북한의 호기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3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개인 논평은 “미국이 허튼 생각의 미로에서 벗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 있게 기다리는 중”이라며 “조미(북미)관계 개선과 제재 압박은 병행될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은 미국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것”이라고 타박하기도 했다. 미국이 제재 완화 요구를 수용하기는커녕 도리어 최근 인권까지 거론하며 자신들을 몰아세우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액면으로는 북미가 서로 상대방의 비핵화ㆍ보상 의지를 의심하며 맞서고 있는 모양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비핵화와 보상 행동의 ‘시퀀싱’(sequencingㆍ순서 정하기), ‘매칭’(matchingㆍ짝 맞추기)을 둘러싼 양측 간 인식 차가 협상 교착의 근본 배경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현재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 수립과 검증에 필요한 북한의 일괄 핵 신고가 무엇보다 선행돼야 하고, ‘미래 핵 위협’의 포기인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 외에 ‘현재 핵’인 영변 핵 시설까지 없애거나 망가뜨리는 성의 정도는 북한이 보여야 제재 완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전면 핵 신고ㆍ검증에 앞서 영변에 국한한 부분 신고와 폐기ㆍ검증으로 신뢰를 먼저 쌓는 게 바람직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의 폐기와 참관 허용만으로도 제재 완화 수준의 보상을 받아내기에는 충분하다는 게 북한의 생각이다.
그러나 답보 상태가 마냥 계속되지는 않으리라는 게 전문가들 전망이다. 아닌 척해도, 올 4월 ‘경제 건설 집중’으로 전략 노선을 바꾼 뒤 손에 쥔 게 별로 없는 김 위원장이나, 탄핵 위기 속에 대북 정책이 ‘전략 없는 인내’로 퇴행한 것 아니냐는 조롱까지 듣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내심은 다급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짐작이 근거다. 김상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최근 정세 전망 간담회에서 “교착이 장기화할 경우 미 정부의 정책적 부담이 상당히 크고 북한 역시 경제 건설 노선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해법을 찾기 위해 한미 정부도 부심 중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번 주중 방한해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 워킹그룹 제2차 회의를 진행할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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