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사단체가 의사들을 무더기로 고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의사보조인력, 이른바 ‘PA’(Physician Assistant)를 통해 불법의료행위를 일삼아 왔다는 이유였다. 끈끈하기로 따지면 손에 꼽을 만한 의사사회에서는 꽤 이례적인 일이다. 그들은 왜 동료 의사를 향해 칼을 겨누게 된 걸까.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지난 10일 ‘빅5 병원’ 중 한 곳인 A병원 소속 교수 13명과 B병원 소속 교수 10명을 PA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ㆍ방조했다며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A병원은 골반뼈에 직접 구멍을 내고 골수를 채취하는 ‘골수 흡입 및 조직검사’를, B병원은 거의 모든 봉합수술을 PA가 담당했다고 병의협은 주장했다. ‘전문 간호사’라고도 불리는 PA는 대형병원에서 단순 수술보조뿐 아니라 원래 의사들만 하도록 돼 있는 봉합수술이나 간단한 시술을 실제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고발 내용이 수사 결과 사실로 밝혀질 경우, 해당 의사와 병원은 형사처벌과 함께 행정처분도 받게 된다.
이번 검찰고발에 대해 의료계는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PA의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자정활동”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임상 현장에서 의사ㆍ간호사에 이은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PA의 존재에 대한 의사들의 위기감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많다.
병원들은 낮은 인건비로 숙련된 인력을 쓸 수 있어 PA의 필요성을 호소한다. 실제로 대형종합병원에서 흉부외과 임상교수로 재직했던 임모씨는 17일 “PA들은 하나의 수술기술을 반복적으로 익히기 때문에 봉합수술 등 간단한 처치는 웬만한 전공의들보다 잘한다”며 “전공의들이 의사에게 배울 기초적인 기술을 PA에게 배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전공의는 기껏해야 수련기간(4년) 동안 일을 시킬 수 있지만 PA는 의사에 비해 현저히 낮은 임금으로 10년 넘게 일을 할 수 있어 대형병원들이 PA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공의의 주간 근무 시간을 80시간으로 제한한 ‘전공의특별법’이 지난해 초부터 시행되자 현장에선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난이 더 심해졌고, 결국 PA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병의협이 지난해 10월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의원 등 회원의사 90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80.5%(727명)가 PA의 불법 의료행위를 목격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법상 PA가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대신 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다. 반면 미국은 1960년대 정식으로 PA제도를 도입했다. 4년제 학사를 수료(학과 무관)하고 최소 3년간 간호보조원 등 의료 관련 경력을 쌓은 뒤 2년제 PA과정을 수료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되는데, 대부분의 주에서 수술 보조는 물론 약물 처방까지 할 수 있다.
불법과 편법의 경계에서 PA를 방치해온 보건당국은 뒤늦게 “PA를 다룰 협의체를 구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의료계 내부에서 PA와 관련돼 찬반입장이 존재하고 있어 PA문제를 논의할 협의체를 구성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며 “PA를 전문간호사 영역에 포함하는 내용도 논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사들은 당국의 이런 움직임이 PA 합법화로 이어질까 잔뜩 경계하며 반발 수위를 높일 조짐이다. 병의협 관계자는 “당국이 그동안 병원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저질러 온 불법을 지금껏 눈감아 오다가 ‘이제는 돌이키기 어렵다’는 논리로 합법화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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