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단체 여호와의증인 신자로 ‘양심적 병역 거부’ 관련 활동에 앞장서 온 성우 양지운(70)씨가 막내아들마저 전과자가 되는 일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양씨는 두 아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로 감옥살이를 하자 2000년대 초반부터 방송활동을 뒤로하고 대체복무제도 도입 운동 등에 매진해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13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지운씨 셋째 아들 원석(26)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1ㆍ2심은 원석씨에게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하지 않는 것은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 법리에 비춰보면 2심 판결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달 1일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진정하게 성립된 양심을 따른 것이면 정당한 사유로 봐야 한다”고 판단한 만큼 2심 재판부가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인지를 다시 심리하라는 결정이다.
이로써 원석씨는 5년여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무죄가 확정될 경우 내년 중 도입 예정인 대체복무를 통해 병역 의무를 마칠 수 있게 된다. 양지운씨는 이날 대법원 판결 후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일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어 감회가 새롭다”는 소감을 전했다.
1968년 성우로 데뷔한 양씨는 외화 ‘600만불의 사나이’ 교양프로 ‘체험 삶의 현장’ 등에서 목소리 연기 등으로 인기를 얻어 ‘국민 성우’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양씨는 1987년 여호와의증인 신자가 됐고 세 아들도 부모의 종교를 따랐다. 이로 인해 양씨 장남 원준씨는 2000년 군사법원에서 징역 3년, 차남 원욱씨는 2011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이 확정돼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양씨는 “큰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2000년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 감옥에 가는 것을 지켜보며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헌법재판소 권고에 따라 도입될 대체복무제가 징벌적 성격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권고하는 수준의 합리적인 방안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대법원은 원석씨 사건 같은 종교적ㆍ양심적 병역 거부 100여건을 추가로 무죄 취지 파기 환송했다. 양씨 사건과 마찬가지로 모두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사건이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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