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정일 칼럼] ‘포스트 여호와의 증인’이 가능한가

입력
2018.12.13 04:40
29면
0 0

나는 중학교에 다니던 4년 동안 여호와의 증인이었다(신경성 위장병으로 1년을 휴학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아서 사회 과목 선생에게 특히 미움을 받았는데, 콜레라 예방주사를 맞던 날 그는 학우들 앞에서 “하느님이 보살펴주는데 주사는 뭐하러 맞냐?”고 조롱했다. 그 선생은 기독교 일반을 향해 이렇게 야유한 것이다. “죽으면 천당 가는데 왜 빨리 죽지 않니?” 전직 육군 대위의 미망인이었던 어머니는 학교를 방문해 교장에게 항의했다.

교련을 피하고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것이 패착이었다. 역설적이지만, 나같은 ‘나이롱 증인’에게는 외부의 박해가 필요했다. 학우들이 보는 앞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교련을 거부하면서 신경성 질환을 앓아야 했다. 소영웅주의는 나를 계속 단련 시켰을 테고, 그런 끝에 외부의 동력이 더는 필요 없는 진짜 증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자 외부도 사라졌다. 세계와 싸우지 않는 이상, 나는 진학에 실패한 평범한 낙오자일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문학소년’과 ‘비행소년’을 겸했고, 그 둘은 아무런 억압도 없이 쥐꼬리만한 내 남은 신앙을 무너뜨렸다.

초기 기독교인이 무수하게 순교한 사정도 위와 같다. 신앙으로 인해 핍박받고 있는 순간만큼 더 확실한 구원의 보증은 따로 없으며, 자기희생을 하면 할수록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확신은 또렷해진다. 희생 끝에 의미(순교자)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자기희생은 ‘희생의 희생’과는 거리가 먼 역겨운 것이었지만, 막스 베버의 그것만큼 역겹지는 않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물질적 성공이 곧 신의 은총이며, 속세에서의 성공이 내세에서의 구원을 보증해 준다고 말한다. 베버는 내가 선택되었다는 확신을 고난이 아닌 물질적 성공에서 찾으라고 계시했으며, 자기희생을 자기개발로 대체했다. 미국과 한국의 개신교는 베버를 열세 번째 사도로 모시고 있지만, 베버야말로 적(敵)그리스도가 아닌가?

지난 11월 10일, SBS 8시 뉴스는 ‘병역 면제 노리고 신도 급증?’이란 제목의 뉴스를 내 보냈다. 이 꼭지를 취재한 박세용 기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 이후 여호와의 증인에 가입하겠다는 문의가 급증했다는 낭설을 바로 잡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실제로 세계 71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봤더니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용적인 나라일수록 신자 수의 증가율은 오히려 떨어지는 거로 나왔습니다. 관련 연구가 많지는 않습니다만,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용적이면 신자 수가 급증할 거라는 통념과 연구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용적인 나라일수록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증가율이 떨어지는 것은 관용이 여호와의 증인을 일반 종교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낙후시킨 때문이다. 세상 바깥에 겉도는 것처럼 보이는 증인들에게 관용이 세속의 자리를 마련해줌으로써 여호와의 증인의 자긍심이었던 자기희생이라는 서사가 증발했다. 관련 연구는 물론 없을 테지만, 일반 종교보다 가혹한 자기희생은 그 자체로 매력 자원일 수 있고 도전욕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므로 자기희생이라는 잠재력이 거세된 종교는 카페인 없는 커피, 니코틴 없는 담배, 알코올 없는 맥주나 같다. 실형 또는 시련이 거세된 ‘포스트 여호와의 증인’은 한갓된 기독교 종파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호와의 증인은 영혼과 영혼 불멸은 물론 천당ㆍ지옥 따위를 믿지 않는다. 하느님이 아담을 흙으로 빚은 후에 불어 넣어준 호흡은 육신의 생기일 뿐, 육신과 따로 존재하는 영혼이 아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으니 호흡이 끊기면 도로 흙이 된다. 불멸할 영혼도, 죄지은 영혼을 영원히 불태울 지옥도 없다. 오로지 여호와를 믿은 사람은 육신으로 부활하거나, 아마겟돈을 살아남아 지구에 영원히 산다는 게 이들의 교리다. 나는 무신론자가 된지 오래지만, 죽으면 흙이 되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여호와의 증인이다. 베버를 모시지 않고 지옥을 팔지 않는 것은 이들의 미덕이지만, 이 두 가지야말로 신자가 늘어나지 않는 근본 요인이다.

장정일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