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청률이 곧 작품의 흥행 척도가 되던 시대는 끝났다. 오랜 시간 방송계를 강타했던 시청률 기근 사태를 거치며 시청률이 의미를 잃은 것이다.
흥행작의 경우 시청률 20%는 거뜬히 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호평을 얻은 작품도 시청률 10%를 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청률의 하락세가 작품의 화제성에도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청률은 낮지만 높은 화제성과 작품에 대한 호평이 줄 잇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작품에 있어 시청률이 갖는 의미가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일례로 KBS1 ‘전국노래자랑’의 지난 9일 방송분 시청률은 11.3%였다. MBC 대표 예능인 ‘나 혼자 산다’가 지난 방송분 12.6%를 기록한 것과 약 1.3% 정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뿐만 아니라 KBS1 아침 시사교양프로그램 ‘아침마당’은 SBS ‘런닝맨’보다도 시청률이 높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전국노래자랑’의 지난 주 출연자나 명장면에 대한 이야기 대신 ‘복면가왕’ 속 복면가수의 정체 추측에 열을 올리고, ‘나 혼자 산다’의 게스트나 ‘런닝맨’ 속 명장면들은 방송 직후부터 포털사이트를 장식하며 화제를 모은다.
지난 2일 종영한 tvN ‘신서유기6’ 역시 시청률은 5.4%를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파급력과 화제성은 엄청났다. 네이버TV의 ‘신서유기6’ 채널 속 클립 영상을 보면 조회수 100만을 돌파한 명장면 클립을 비롯해 대부분의 영상들이 20만 조회수를 거뜬히 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유튜브나 SNS 영상 조회수까지 합산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의 대중들로부터 ‘신서유기6’가 회자됐음을 알 수 있다.
tvN ‘미스터 션샤인’(이하 ‘미션’) 역시 시청률과 화제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 예다.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이하 ‘김비서’) 종영 3주 전 첫 선을 보였던 ‘미션’은 방송 2회만에 ‘김비서’의 시청률을 넘으며, 단 3회차 만에 ‘김비서’가 끝내 넘지 못했던 시청률 10% 벽을 단숨에 넘기도 했다. 하지만 시청률의 가파른 상승세에도 ‘미션’은 방송 2주차까지도 ‘김비서’에게 TV화제성 1위 자리를 내주며 화제성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3주차부터는 ‘미션’이 ‘김비서’를 꺾고 TV화제성 1위를 차지했지만 단 1% 차이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김비서’의 종영과 직전 다시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김비서’의 종영 이후에는 ‘미션’이 꾸준히 드라마 화제성 1위를 차지했지만, 결과적으로 두 배 이상의 시청률 격차를 보였던 ‘미션’과 ‘김비서’의 체감 인기만 놓고 봤을 때 ‘미션’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미션’이 시청률 기근 속 유례 없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음에도 온라인이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한 2차 콘텐츠의 생성률이 크게 높지 않았던 만큼 체감 인기 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청률과 화제성의 괴리가 생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TV 이외에도 방송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인들은 바쁜 삶 속에서 TV 앞에 앉아 본 방송을 챙겨보기보단 다시보기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나 방송의 하이라이트만 쪼개 담은 클립 영상 등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즐겨 이용하고 있다. 굳이 TV가 아니어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레 시청자들이 다양한 플랫폼으로 분산되었고, TV 시청률로 집계되지 않는 잉여 시청자들이 발생한 것이다. 시청률이 적게 나와도 화제성은 높은 아이러니한 상황은 여기서 기인한다.
여기에 TV외의 플랫폼을 주로 사용하는 시청층이 화제성을 주도하는 10대부터 2049 시청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TV 플랫폼에 익숙한 중장년층, 고령 시청자들이 TV 시청률의 중심이 됐지만, 해당 시청층은 2차 콘텐츠 생산이나 온라인상의 화제 몰이와는 다소 동떨어진 연령대로 화제성에는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대신 젊은 시청자들이 짧은 클립 영상이나 다시보기 플랫폼 등을 통해 소비한 프로그램은 TV시청률에선 약세를 보이는 대신 활발한 2차 콘텐츠 생산 등으로 인한 파급력을 가지며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방송가에서 흘러 나오는 “시청률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이야기도 이 같은 시청 및 트렌드 소비 패턴의 변화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방송사들 역시 TV 전체 시청률보다는 2049 타깃 시청률 등 화제성을 끌어줄 수 있는 시청층의 지표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이에 대해 SBS의 한 관계자는 “SBS 역시 사내 지표를 가구 시청률이 아닌 2049 시청률로 바꾼 지 오래”라고 전했다. 해당 관계자는 “각 프로그램 별 시청률 공지를 할 때 역시 2049 시청률만 사용하고 있다”며 “해당 타깃 시청률이 화제성, 광고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다 보니 가구 시청률은 정확한 지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1인 가구의 증가 등으로 인해 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한 시청층이 늘어나면서 가구 시청률의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시청률이 높음에도 광고는 팔리지 않았던 저녁 일일 드라마들을 각 방송사들이 폐지했던 것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는 선택”이라고 전했다.
tvN 측 관계자 역시 “tvN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채널이 목표인 만큼 최근 남녀 2049 타깃시청률을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보고 있다”며 “남녀2049 시청층은 화제성 창출뿐만 아니라 실제구매력을 갖춘 연령대이기도 한 만큼, 광고주들에게도 중요한 타깃으로 여겨지고 있다. 때문에 가구 시청률과 함께 중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가구 시청률에서 타깃 시청률이나 화제성 지수 등으로 프로그램 흥행의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 한 방송 관계자는 “시청 패턴 등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시청률이 아닌 프로그램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할 때”라고 전하며 평가 기준 변화를 촉구했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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