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번씩 복용하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일 겁니다.”
비뇨기과 원장이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은 ‘비아그라’였다. 약사는 ‘전립선이 좋지 않으면 발기부전도 생길 수 있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 질 거다’고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접시를 깨고 마당으로 뛰쳐나가는 소녀처럼 약을 손에 쥐고 도망치듯 나왔다. 사실 흡연 때문에 남자로서 자신감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며칠 후 금연을 결심을 했다. 계기가 있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친 나는 으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같이 수업을 듣는 동생이 다가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민규형 내일부터 같이 금연해요 나 무서워죽겠어요”
동생은 나에게 핸드폰에 있는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왠 노인이 중환자실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한 상태였다. 동생의 장인이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하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장인어른 사진만 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평소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지만 담배가 원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있다는 것이었다.
올 5월에 성주에서 사드배치반대시위 취재를 갔다. 시위 규모는 점점 커졌고 주민과 경찰들의 대치도 점점 격해졌다. 시위대와 경찰이 움직일 때마다 기자들은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몇 차례 왔다 갔다 하자 숨이 차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전화기 너머 사수의 질책이 이어졌지만, 심장은 요동을 쳤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담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취재가 끝난 후엔 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연기를 길게 내 뿜는 순간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꼽은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날 밤 동생에게 전화해 함께 금연하기로 했다. 20여 년을 이어온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핸드폰 배경화면도 담뱃갑에 있는 혐오스러운 사진으로 바꿨다. 흡연하고 싶을 때는 동생과 연락해 서로 금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길어야 한달 정도 저러다 말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예견을 편견으로 전락시키는데 꼬박 1년 반이 걸렸다. 핸드폰 바탕화면에 있는 사진을 보며 참았다.
금연을 하고 나서 달라진 것은 너무 많다. 무엇보다 시들시들해졌던 남성이 돌아왔다. 비뇨기과 진료는 남의 일이 되었다. 담배 냄새를 신경 쓰거나 주머니 안에 담뱃재를 털지 않아도 되었다. 가정의 평화도 찾을 수 있었다. 하루 5,000원씩 모은 돈이 1년이 반이 되자 200만원이 넘었다. 돈은 아내의 명품 가방을 사는데 썼지만 오랜만의 ‘조공’으로 아내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20여년 만에 처음으로 깨끗한 한해를 보냈다. 건강도 되찾고 남성으로서 자신감을 되찾았다. 잊을 수 없는 한해를 앞으로도 쭉 이어가고 싶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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