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정예화하려면” 전문가 진단
예비군 훈련의 부실함은 오래도록 끊임없이 지적돼 왔지만 국방부와 당국은 이렇다 할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방개혁 2.0’의 추진으로 예비군 내실화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국방개혁 2.0의 핵심은 현재 22개월인 군 복무 기간을 2022년까지 18개월로 줄여 60만 명에 달하는 현역 군인을 52만2,000명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취지다. 상비인력이 감축되는 만큼 예비병력의 중요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국방부가 지난달 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주최한 ‘2018년 예비전력 발전세미나’에서도 예비군 내실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방법론이 제시됐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와 윤진영 국방대 군사학 박사(안보문제연구소 예비전력연구센터장)는 대대적인 예비군 감축을 전제로 화기ㆍ장비 첨단화, 예비역 평시복무제도 도입 등을 주장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예비군 편제개편 통해 감축 추진
동원예비군 훈련수당 현실화
장비도 ‘현역 수준급’으로 교체
드론봇 등 모듈형 부대로 변신을
두 전문가 모두 현역병의 4배에 달할 정도로 비대한 예비군 규모(2018년 기준 275만 명)가 정예화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예비군 편제를 재설정하고 정예대원을 양성하면 예비병력은 70만 명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현재 동원예비군을 정예대원으로 편성할 시 약 16만 명의 병력이 필요했다. 지역예비군은 현재 읍ㆍ면ㆍ동 단위 중심으로 짜인 편제를 폐지하고, ‘30만 명 이상 시’, ‘30만 명 이상 구’, ‘30만 명 이하 시ㆍ구’, ‘기타지방자치단체’로 나눌 경우 약 54만 명의 병력으로 각 지역의 방어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윤 센터장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그는 “북한의 비핵화 등으로 (종전선언 등)완전한 평화가 전제된다면 전역 1~4년 차를 대상으로 하는 동원예비군을 1~3년 차로 줄이고, 5~8년 차로 구성된 지역예비군을 4~5년 차로 조정해야 한다”라며 “이렇게 할 경우 동원예비군은 95만 명, 지역예비군은 55만 명 수준까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동원예비군은 130만여 명, 지역예비군은 145만여 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이 예비군 내실화의 전제조건으로 병력 감축을 주장하는 것은 인력 유지ㆍ관리에 들어가는 예산지출을 줄여 훈련수당을 현실화하고, 미비한 장비를 보완하자는 취지다. 이렇게 할 경우 더 이상 예비군 훈련자들이 현역시절 사용한 적 없는 구식 무기를 사용하는 불합리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으리라 기대된다. 윤 센터장은 “동원예비군은 내년부터 2박 3일 훈련에 3만2,000원, 지역예비군은 기본훈련 1일 기준 1만3,000원가량을 훈련수당으로 받게 되는데, 이는 생업을 뒤로하고 훈련을 받는 예비군들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최소한 도시근로자 평균임금 수준의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 역시 “동원예비군 정예대원들은 실제 전투원이기 때문에 100% 자원병력으로 구성해 혹서기와 혹한기에 각각 14일, 연중 소집훈련 2회 등 총 30일간의 동원훈련을 받아야 한다”라며 “대신 훈련수당은 대학생들의 방학 아르바이트 기대 소득(여름ㆍ겨울방학 총 400만 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폭 인상해, 1일 15만 원(30일 기준 총 450만 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역예비군도 4만 명은 정예대원으로 분류해 동원예비군과 똑같은 조건으로 훈련을 받게 해야 하고, 나머지 일반대원 50만 명은 3박 4일간 동원훈련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진영 국방대 군사학 박사
동원예비군 전역 1~3년차로 축소
간부 출신 예비역 적극 활용 위해
평시복무제도 적극 도입ㆍ확대 필요
복무 정년 등 법령부터 개선해야
이들은 훈련장비의 현대화와 훈련장 시설의 과학화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신 대표는 “현역병 시절에는 좌표를 입력하고 컴퓨터 엔터키를 치면 포탄이 알아서 장전돼 목표지점으로 날아갔는데, 예비군이 되면 견인포로 훈련을 받기 때문에 곡괭이질을 하고 계산기를 두들겨야 하는 실정이다. 완전히 다른 포 시스템을 동원훈련 2박 3일 동안 숙달하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라며 “포뿐만 아니라 개인화기, 전차 등 대부분의 장비를 현역시절 사용하던 것과 같은 수준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 역시 “현재 경기 금곡예비군 훈련장 등 전국 5개 훈련장에 영상 모의훈련 사격장, 가상현실 훈련장, 서바이벌 사격장 등 첨단시설이 도입됐다”라며 “이 같은 과학화 시설을 전국에 42개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부대편성, 복무제도 등 전체적인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 대표는 “현재의 예비군 동원사단 개념을 해체하고 모듈형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보병훈련단, 기계화보병훈련단, 드론봇교육훈련단 등으로 부대를 나눠 전문적인 훈련을 하고, 전투 발발시 전장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효율적인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예를 들어 개마고원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전차가 필요 없기 때문에 경보병 위주로만 부대를 꾸려 전장에 들어갈 수 있다. 반대로 시가전에는 장갑차 부대와 보병 부대를 혼합해 대대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완편된 부대를 유지하기보다 전투상황에 맞게 부대를 결합해서 운용하자는 의미다.
예비역 간부들의 경력과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평시복무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평시복무제도란 예비역 간부들이 비상근 또는 상근으로 예비군부대에 복무토록 하는 제도로, 이는 적은 비용으로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예비군 시스템이다. 실제로 육군은 2014년부터 비상근 복무제도를 운영해 현재 585명의 예비역 간부가 연간 15일씩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훈련 참가 때마다 평일 10만 원, 휴일 15만 원의 훈련비를 지급받는다. 육군은 이 제도를 운영한 부대의 전투력이 약 40% 향상했다고 보고 있다.
윤 센터장은 “비상근 복무제도에 투입되는 예비역 간부들의 직위가 주로 소대장ㆍ중대장급이라면, 상근 예비역들은 핵심참모, 치장물자관리, 증ㆍ창설 준비 등 주요 직책을 맡는 지휘관들로 구성할 수 있다”라며 “이들은 현역 간부만큼의 보수를 받게 되는데, 이미 받고 있는 퇴직연금에 추가로 소정의 월급을 더하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이 같은 방식으로 현역 장교 1명을 유지하는 비용의 30% 수준으로 예비역 장교를 상근 복무시킬 수 있다. ‘저비용 고효율’ 시스템인 셈이다. 현역병 전역자의 경우도 이 제도를 적용하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추가 연구와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 예비군 개선책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그 동안 예산이었다. 아무리 예비군 수를 대대적으로 감축해 병력유지비용을 줄인다 해도 현재 책정된 예산만으로 훈련수당 인상, 장비 현대화, 새로운 시스템 도입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아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예산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윤 센터장은 “올해 예비군 예산은 국방예산의 0.3% 수준인 약 1,300억 원”이라며 “이를 국방예산의 1~2%까지만 끌어올려도 예비군 내실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 대표 역시 “예를 들어 K9 자주포 한 대가 45억 원인데, 이 말은 1조3,500억 원 정도만 들이면 총 300문을 교체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연구결과 예비군 내실화에 들어가는 예산은 연간 10조 원 안팎으로 추산되는데, 국방개혁2.0 예산(2019년~2023년 270조7,000억 원)에 비하면 그리 큰 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예산문제보다 외부 환경조성이 예비군 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어 더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윤 센터장은 관련 법령부터 손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국군조직법과 병역법 등에는 상근복무 예비역 간부의 신분과 귀속 정원에 대한 근거가 부재하다”며 “관련 조항의 신설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는 대령 56세, 중령 53세, 소령 45세, 원사 55세, 상사 53세로 예비역 정년이 정해져 있다”며 “이 말은 바꿔 말하면 56세에 퇴역한 대령은 상근 예비군으로 복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의미로, 관련 법령을 개정해 예비역 복무 정년을 최소 60세까지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그간 숱하게 예비군 정예화를 부르짖어도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은 군 부대 내 동원예비군 병과의 힘이 부족했다는 의미”라며 “학계ㆍ언론, 기획재정부ㆍ행정안전부, 국방부 실ㆍ국장 등이 모인 ‘민관군 예비전력혁신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원회를 국무총리실 산하 등에 둬서, 국방부 장관에게 예비군 내실화 방안을 권고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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