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에게 속아 4억5,000만원을 뜯긴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10일 오전 광주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김모(49ㆍ구속)씨에게 속아 4억5,000만원을 뜯기고 김씨의 자녀 취업을 청탁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6ㆍ13 지방선거와 관련해 공천을 기대하고 돈을 건넸을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윤 시장은 10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김씨와 직접 (지방)선거 이야기를 한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김씨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엔 공천 관련 내용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광주지검 특수부(부장 허정)은 이날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를 받고 있는 윤 전 시장을 불러 김씨에게 사기 당한 돈을 무슨 목적으로 건넸는지 등을 집중 추궁했다. 검찰은 김씨를 권 여사로 믿었던 윤 전 시장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후보로 공천 받는 걸 기대하고 김씨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윤 전 시장이 김씨의 사기에 걸려든 지난해 12월 21일부터 올해 10월 경찰 수사가 착수되기 직전까지 김씨와 268차례나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중 김씨가 보낸 메시지엔 ‘(민주)당 대표에게 (윤 전 시장을) 신경 쓰라고 얘기했다’, ‘경선이 다가온다.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는 내용이 있었다. 김씨는 조직 관리 자금 등을 거론하며 ‘꼭 우리 시장님 재임하셔야겠지요’라는 격려성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김씨는 특히 1월 말쯤엔 당시 광주시장 선거 경쟁후보였던 이용섭 현 광주시장에 대해 ‘이용섭과 통화해 주저앉혔다(출마 포기시켰다는 뜻). 큰 산을 넘은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윤 전 시장을 속였다. 김씨는 앞서 1월 24일 문자메시지를 통해 ‘대통령 생신 때 (대통령을) 만나 당신 이야기를 했다’고도 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지난해 12월 21일 윤 전 시장에게 권 여사를 사칭하며 5억원을 보내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이튿날 윤 전 시장과 통화하면서 윤 전 시장의 향후 정치 행로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윤 전 시장이 김씨에게 공천과 관련한 답변을 문자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윤 전 시장은 그러나 4월 3일 광주시장 후보 경선에서 컷오프 당하고, 이튿날 불출마 선언을 한 뒤 김씨에게 돈을 돌려달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윤 시장에게 돈을 뜯어낸 김씨는 지난 7~9월 지역 정치권의 유력 인사 4명에게 같은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였지만 이들 모두 사기를 의심해 돈을 보내지는 않았다.
검찰은 윤 전 시장과 김씨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및 전화통화(12차례) 내용 등으로 미뤄 윤 전 시장의 행위가 선거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정당의 후보자 추천 관련 금품수수’에 해당한다고 보고 조만간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검찰은 또 윤 전 시장이 김씨에게 송금하기 위해 은행 두 곳에서 3억5,000만원을 빌린 과정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어겼는지에 대해서도 들여다 보고 있다. 은행들이 윤 전 시장에게 대출해 주면서 담보 설정 등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윤 전 시장은 지난해 12월 26일 2억원을 대출받아 자신 명의로 김씨 어머니 계좌로 이체했고, 같은 달 29일 지인에게 빌린 현금 1억원을 비서에게 지시해 비서 명의로 보냈다. 이어 올해 1월 5일과 1월 31일 각각 1억원과 5,000만원을 대출받아 본인 명의로 송금했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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