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에서 거의 사라진 M16 소총 지급
자주포 대신 구형 견인포로 훈련
그나마 병력의 절반 수준 보급 그쳐
개혁 사각지대 놓인 275만 예비군
한반도 정세 변화 따라 재편 시급
“70만명으로 줄여도 충분… 장비 현대화 급선무”
“예비군 저격수 부대를 양성하겠다.”
2011년 국방부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이름하여 ‘예비군 스나이퍼(저격수) 양성’ 프로젝트. 유사시 저격수로 활용할 목적으로 향방 및 타격소대별 한 명씩을 선발해 총 3만명 규모의 예비군 저격수를 운영하겠다는 공언이었다. 이들 예비군 저격수에겐 확대경이 장착된 M16A1소총을 지급, 사격연습을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더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현재 정부가 운영되고 있다고 밝힌 예비군 저격수는 애초 계획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전문가들은 그마저도 ‘보여주기 식’ 훈련이라고 입을 모은다. 총신이 짧은 M계열 소총으로, 부사수 없이 훈련을 진행해 고도의 사격술을 발휘하는 저격수를 양산한다는 계획은 뜬구름 잡기라는 얘기이다.
현역병 의무를 지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전역 후 8년 동안 반드시 일정 기간 이름을 올려야 하는 예비군의 현주소는 허황하게 던져졌던 ‘저격수 양성’ 프로젝트와 닮아있다. 한국일보가 국방부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확보한 자료들에 따르면 정규군은 ‘국방개혁 2.0’ 등을 통해 적극적인 변화를 준비 중이지만, 동원예비군과 지역예비군 등 총 275만여명에 달하는 비대한 덩치의 예비군에 대해선 개혁과 구조조정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들엔 40여 년 전 생산을 시작한 구형 소총이 여전히 지급되고 있으며, 포병 병과엔 현역 부대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견인포가 주어지고, 10년 동안 대동소이한 자료로 교육이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다양한 국방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시계바늘에 묶여있는 대한민국 예비군 실태를 조명했다.
◇ “써본 적 없는 구식 견인포를 어떻게 쏩니까”
현역병의 네 배에 달하는 비대한 규모, 노후장비와 시대와 동떨어진 교육으로 비판을 받아온 예비군에 대해 정부는 줄곧 절반 수준(150만 명)으로 감축, 훈련 기간 5년으로 단축, 물자확보를 통한 정예화 등을 약속해왔지만 가시적인 변화는 전무하다. 실제 예비군 규모는 ‘국방개혁 2020’이 발표된 2005년 300만 명에서 올해 기준 275만 명으로 13년 동안 25만여 명이 줄었지만 이는 입대자 감소에 따른 것으로 인위적인 조정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결과이다. 이 병력을 유지, 관리하는데 드는 예산은 1,325억 원(2018년)에 이른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예비군 훈련에 참여하는 이들이 체감하는 예비군 실태는 참담한 수준이다.
강수빈(27)씨는 지난달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경기 파주시 월롱면 소재 파주예비군훈련장을 찾았다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영점 사격을 하려고 사로에 들어가 발견한 총기가 현역복무 시절 사용하던 것과 전혀 다른 기종이었다. “현역으로 복무할 때는 K2소총을 사용했는데,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M16 소총을 줬어요. 2년여 동안 숙달했던 개인화기 대신 구형 총기를 주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죠.” 대다수 예비군은 매년 훈련장을 찾을 때마다 강씨와 비슷한 의문을 품는다. 현재 예비군 훈련 대상에 포함된 대부분 병력은 현역 시절 K2 소총을 사용했고, 심지어는 이를 개량한 K2C1 소총을 사용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현재 지역예비군 전원엔 M16 소총을 이용한 사격훈련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원예비군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전문가들은 동원예비군의 개인화기 역시 M계열이 K계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고 지적했다. 지역예비군과 다르게 전시 야전에 투입되는 동원예비군임에도 대부분이 현역 때 사용한 적 없는 노후장비로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동원예비군의 개인화기 종류별 보유량을 파악하기 위해 정부에 문의했지만 국방부는 관련 수치를 밝히지 않았다.
그나마 개인화기는 예비군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재 숙달이 가능하지만,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포는 사정이 다르다. 현역 때 주로 K-9이나 K-55 등 자주포를 다뤘던 동원예비군은 전역 후 차량으로 끌고 다니는 수 십 년 된 견인포로 훈련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경기 연천군 동원훈련에 참여한 이모(24)씨는 “현역 때 사용하던 자주포는 좌표를 입력하면 포탄이 알아서 타깃까지 날아갔는데, 동원훈련에서 쓴 견인포는 사용방식이 완전히 달랐다”라며 “포 사격 체계가 완전히 다른데 이를 2박 3일 동안의 동원훈련으로 숙달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전차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올해 초 동원예비군 훈련에 참여했던 한 예비역 간부는 “현역 시절 탔던 전차는 K1A1전차인데, 동원훈련에서는 40년이 넘은 M48 계열의 전차로 훈련을 받았다”라며 “기계를 작동하는 방식이나 기본 매뉴얼이 달라 실전투입 시 과연 이 장비를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역예비군용 개인화기ㆍ장비류
전체 예비군 수에 턱없이 부족
안보교육 내용 10년째 대동소이
“현역시절 배웠던 자료 읽어줘”
장비 수령ㆍ훈련대기 시간이 절반
미숙한 진행에 효율성도 낙제점
◇“구형장비라도 있으면 다행…” 방독면도 못 받는 예비군
그나마 노후장비라도 전원에게 보급되면 다행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부 훈련장에서는 예비군들이 장비를 공유하기도 한다. 9월 경기 김포시 월곶면 김포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 받은 송인재(29)씨는 “방독면과 총기 등 개인장비 대부분을 개인별로 나눠주지 않았다”라며 “개인 장비 중에는 탄띠와 방탄헬멧만 한 개씩 지급됐다“고 말했다. “열명으로 조를 편성해 방독면을 돌려가며 썼어요. 총기 역시 사격장 각 사로에 비치된 총들을 훈련병이 번갈아 사용했을 정도입니다.”
현재 대다수 지역예비군용 개인화기와 장비류는 전체 병력 수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육사 30기로 예비역 준장인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이 국방부에게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이 보유한 지역예비군용 개인화기와 단독군장 장비류(방탄헬멧, 요대, 수통, 우의 등)는 88만2,000여점이다. 전체 지역예비군 145만여명에 비해 개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국방부는 “지역예비군은 지역방위작전을 펼치는 인원과 생업활동에 종사하는 인원이 교대로 작전에 투입되는 시스템”이라며 “이때 지역방위작전에 소요되는 인원을 88만2,000명으로 잡고 이 인원에게만 개인화기와 장비를 지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세영 건양대 군사경찰대 학장은 “국방부 논리대로라면 인력 교대 때마다 총기 영점사격을 다시 하고, 개인 수통도 없이 전쟁에 임하라는 소리”라며 “장비의 기능점검, 숙달훈련, 위생관리 등 모든 면에서 장비공유는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반도 특성상 유사시엔 좁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전시 전원투입을 염두에 두고 1인 1화기, 1인 1장비를 보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일부 장비는 국방부가 계산한 소요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방독면은 전체 소요 88만2,000점에 크게 부족한 71만4,000점(80.9%)만 구비돼 있고, 정화통과 탄입대는 전체 소요 176만4,000점 중 각각 69만8,000점(39%), 165만8,000점(93%)만 보유하고 있다. 단독군장이 아닌 완전군장으로 확대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배낭 11만2,000점 ▦야전삽 12만7,000점 ▦반합 9만8,000점 ▦천막 4만2,000점 ▦모포 18만3,000점 ▦대검 2만3,000점 등 개인장비 대부분은 전체 지역예비군 병력의 10%에도 달하지 못하는 수량이다.
◇수년째 큰 변화 없는 자료” 발전 없는 안보교육
예비군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안보교육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높다. 올해 경기 남양주시 금곡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 받은 석훈철(30)씨는 “현역시절 안보교육에서 봤던 내용과 대동소이한 자료를 10년째 반복해 보여주고 있었다”라며 “내용도 내용이지만, 강사는 파워포인트 자료에 적힌 내용을 그냥 읽어주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송인재씨도 “’베트남이 왜 무너졌는가’라는 내용은 현역병 때부터 매년 들어와 이젠 통째로 외울 지경”이라며 “최근 동북아 정세를 곁들이는 등 안보교육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업데이트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부적절하거나 엉뚱한 내용을 교육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경남 거창군 훈련장에서 진행된 예비군 훈련에서는 예비역 장교 출신 지휘관이 ‘예비군 동원 절차’ 교육 도중 “환단고기(桓檀古記ㆍ일제강점기에 간행된 한국 상고사 역사책)를 읽어보라”거나 “5ㆍ18 민주화 운동과 (2016년)광화문 촛불집회 등이 발생하면 예비군 동원령 선포가 가능하다”는 등의 발언이 나와 논란이 일었다. 당시 육군본부는 “해당 사안은 개인적인 문제로 확인되었고 해당 인원도 본인의 과실임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부실강의 등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는 강사를 선정하는 시스템 자체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방부에 따르면 예비군 교육 담당 강사 선정은 매년 초 조달청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이뤄진다. 이때 국방부는 강사가 아닌 강사단체를 선정하고, 강사단체가 강사진 명단을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현재 이 시스템을 통해 확보된 안보 강사 97명이 전국 예비군 훈련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국방부와 군이 이 과정에서 강사의 자질 등을 판단하는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강사단체에 ‘연 30시간 이상 강사 경험’, ‘강사의 군 경력’ 등의 항목을 강사선정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가이드라인일 뿐 세부적인 기준은 전적으로 강사단체가 설정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다만 정치적 중립을 어겼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한 강사는 예비군 민원, 부대 관계자 모니터링을 통해 업무정지, 업무제외 등 사후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실제 최근 5년간 강사 3명이 이 같은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제재조치를 받은 이도 이듬해 다시 안보강사로 재선정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는 강사단체를 관리할 뿐 강사 개개인 이력을 추적하지 않는다”라며 “강사 재선정 과정에서 제재 경력의 강사를 솎아낼 시스템은 없다”고 설명했다. 세금으로 안보강사에게 시간당 강사료 17만원을 지급하고 있음에도 국방부는 강사 선정과 사후 관리를 사실상 외면하는 셈이다.
◇”장비 받는 데 한 시간… 훈련 평가도 제각각”
예비군들은 미숙한 운영이 훈련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5월 경기 남양주시 금곡예비군 훈련장에서 학생예비군 훈련을 받은 신모(25)씨는 “개인장비, 방탄헬멧 등을 받는 인도인접(인수인계 절차)에만 한 시간 이상 걸렸다”라며 “이 외에도 훈련 중 불필요하게 대기하는 시간을 합치면 전체 훈련 시간의 절반에 달할 정도다”고 밝혔다. “각 훈련이 끝난 후 바로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면 전체 훈련시간을 줄일 수 있음에도 정해진 훈련시간을 채우기 위해 예비군들을 잡아두고 있기 일쑤죠. 차라리 압축적인 훈련을 하고 퇴소 시간을 당겨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조기 퇴소자를 가려내기 위해 도입된 ‘성과위주 측정식 합격제’ 제도도 허울뿐이라는 지적이다. 올해 경기 파주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은 박모(25)씨는 “영점사격으로 다섯 발을 쐈는데 탄착군 형성이 안 돼 재시험을 봐야 했다”며 “하지만 재시험은 실탄사격이 아닌 시청각 교육으로 대체했다”고 말했다. 송인재씨 역시 “안보강의 집중력을 높인다는 취지로 퀴즈 문제가 적힌 A4용지를 각자 한 장씩 받았다”라며 “강의를 듣고 퀴즈를 풀어서 제출하면 이를 채점해 조기 퇴소 여부를 가린다고 했지만, 쉬는 시간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용지를 다 걷어가 버렸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별다른 재시험 없이 조기 퇴소했다. 이에 국방부는 “훈련과정 평가는 불합격자의 수준, 교탄 및 훈련장 여건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수임군부대장 판단 하에 시행 중이라 각 부대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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