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무교육 수준 OECD 꼴찌
사람 투자가 최고의 불평등 해법
공교육 강화 계층사다리 복원해야
유대인은 모계 혈통을 따른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무조건 유대인이다. 그래서 흑인 유대인도 있다. 3,000년 전 에티오피아로 흘러 들어가 흑인과 피가 섞인 ‘팔라샤’가 대표적이다. 피부는 검어도 수천 년 동안 유대교 전통을 지키며 살아왔다. 1991년 5월 이스라엘은 수십 대의 군 수송기와 여객기를 내전 상태 에티오피아로 급파했다. 36시간 동안 1만4,000여명의 검은 유대인을 이스라엘로 실어 나르는 ‘솔로몬 작전’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에 정착한 검은 유대인의 평균 교육기간은 1년 6개월. 앞서 이스라엘에 정착한 러시아 백인 유대인의 평균 교육기간은 12년이었다. 러시아와 에티오피아의 경제력 격차만큼 두 부류 유대인의 가정환경은 차이가 컸다. 백인 유대인은 사업가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이 많았지만 흑인 유대인은 대부분 가난한 농부였다. 그럼에도 그들의 자녀는 별 차이 없이 이스라엘 국민으로 성장했다. 무상 의무교육의 힘이다.
탈무드는 유대인이 기원전 1세기 세계 최초로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팔아서 근근이 살아가는 힐렐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야학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밥은 굶어도 학교는 포기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이 왔다. 돈을 한 푼도 못 벌어 학비를 낼 수 없었다. 힐렐은 교실 지붕 창문에 귀를 대고 수업을 듣다가 피곤이 몰려와 깜박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한 학생이 눈에 덮인 힐렐을 발견했다. 유대인 사회는 이후 모든 학생들이 수업료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제일 먼저 갖춘 것도 의무교육 시스템이다. 3~18세 이스라엘 국민은 경제적 지위나 인종에 관계 없이 누구나 무료 교육을 받는다.
교육은 좋은 일자리와 미래 소득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투자다. 시장에만 교육을 맡겨 놓으면 어떻게 될까. 부유한 가정의 자녀는 재능이 없어도 좋은 교육을 받고, 가난한 집 아이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교육에서 소외되기 십상이다. 교육 투자는 부모 소득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부자일수록 교육에 많이 투자하고 자녀의 미래 소득은 더욱 커진다. 교육 공공성이 취약할수록 불평등이 커지는 이유다.
한국은 올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인구 2,000만명 넘는 나라 기준 세계 9위다. 그간 먹고 살기에 바쁘다는 핑계로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교육의 상당 부분을 맡겨 왔다. 학교가 재산이니 영리 추구가 이상할 것도 없다. 공금으로 명품가방과 성인용품을 사고 여행을 다니는 유치원 비리는 국가가 교육을 방기한 당연한 귀결이다. 이들은 “아이 교육을 정부가 하겠다는 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며, 국가가 부담하는 고등교육 재정이 OECD 평균의 2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공교육이 부실하니 내신과 수능도 사교육 영향이 절대적이다. 소득 상ㆍ하위 계층 자녀의 명문대 진학률은 20배 넘게 차이 난다. 학생부 전형의 다양한 특기 활동도 가정환경에 좌우된다. 사교육 격차가 학력으로 이어지면서 계층 이동 사다리는 끊긴 지 오래다. 교육의 질은 더 암울하다. 오로지 성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승자독식 경쟁 교육이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공교육만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 만족도와 학업 성취도를 이룬 핀란드 교육을 언제까지 부러워해야 하나.
소득주도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완화될 기미가 없다. 고용 위기에 놓인 취약계층을 위해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는 건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하지만 지속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물고기를 줄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국가가 가정환경과 무관하게 모든 아이가 공정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게 관건이다. 사람이 희망이고 경쟁력이다. 공교육 정상화에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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