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결산 [굿바이 2018!]의 첫 주인공이 왜 박중훈이냐고 누구는 궁금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올 한해 박중훈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추려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 한국영화 이제는 한국 연예계 전반의 ‘맏형’으로 올 한해 다시 기지개를 켠 박중훈을 만났다.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사려깊은 입담에 푹 빠져들었다.
한국일보(이하 HI) : 그래도 드라마에서 자주 보기를 원하는 팬들이 많다.
박중훈(이하 박) : 물론 좋은 드라마로 제의가 오면 출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단, 두 가지가 선결됐으면 한다. 우선 개선된 제작 환경이 보장됐으면 하고, 전 대본이 미리 나와 캐릭터를 분석할 시간이 좀 더 많이 주어지기를 희망한다. 이제 플랫폼이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고 구분될 수 없는 시대다. 그렇다고 영화를 ‘리스펙트’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극장에서 볼 가치가 있는 영화와 없는 영화로 재편되고 있을 뿐, 영화를 극장에서 혹은 TV에서 보느냐 선택하는 시점으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본다.
HI : 예능 프로그램도 KBS2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 이후 10여년만에 다시 도전했다.
박 : 그때는 예능이란 말을 안 썼다. 쇼 오락이었지. (웃음) 그 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올리브와 tvN에서 방영중인 ‘국경없는 포차’는 처음 경험하는 리얼 예능이다. 10년 가까이 나를 몰랐던 젊은 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 무거운 이미지로 날 알고 있는 분들의 오해를 없애고 싶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즐겁게 촬영했다.
HI : 나이 얘기를 꺼내서 미안한데, 함께 출연하는 신세경과 샘 오취리, 이이경 등 대부분이 한참 어린 후배들이다.
박 : 처음 만난 샘 오취리한데 “형이라 불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넉살좋게 “형님” 하더라. 그런데 다음에 만나니까 우물쭈물대는거다. 내가 자기 어머니와 동갑이란 걸 뒤늦게 알고 “형님”호칭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털어놓더라. (웃음). 안성기 형님이 나를 대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적인 예의를 서로 지킨다는 전제하에 나 역시 후배들을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나이어린 친구’로 여긴다. 200~300년 후 사람들이 보면 그 친구들이나 나나 모두 같은 시대 사람들인데 열 살 많고 스무 살 많고를 뭘 그리 따지나. (웃음)
HI : 2년 가까이 진행중인 KBS2라디오 ‘박중훈의 라디오스타’까지 포함해 활동 영역은 넓어져 반갑지만, 예전처럼 영화에 집중하기를 원하는 팬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박 : 과유불급을 항상 명심한다. 뭐든 지나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연출과 시나리오를 겸할 영화 1편과 연기로 참여할 영화 두 어편을 검토중이다. 연출과 시나리오를 겸할 영화는 어느 정도 진척된 상태다. 조심스러운 전망이지만, 내년에는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또 영화 연출에 도전한다면 어떤 분들은 걱정부터 하실 지도 모르겠다. (웃음) 솔직히 (연출 데뷔작인) ‘톱스타’가 망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자책감으로 2~3년간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처럼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겉절이’에서 ‘묵은지’로 익어가는 과정이었던 듯 싶다. 배우의 연기가 싱싱한 맛으로 먹는 겉절이라면, 감독의 연출은 곰삭은 맛으로 먹는 묵은지다. 그 과정을 거쳤으니 다음 연출작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같다.
HI : 지난달 초 SNS에 ‘배우로 처음 촬영장에 나선 지 33년째 되는 날’이란 내용의 글을 올렸다. 34년째가 될 내년은 어떤 모습으로 대중과 만날 계획인가?
박 : 연기를 하든, 연출을 하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든, DJ를 하든 등정로는 다르지만 결국 엔터테이너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인이란 자부심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지만,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이 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이제는 엔터테이너가 최상위 개념이라고 본다. 오기로 남들 보란 듯이 일하던 시기는 지났다. 연기도 연출도 억지 부리지 않고 이젠 날 위해 편안히 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대중이 사랑해 준다면 그건 분명히 너무나 감사한 ‘덤’일 것이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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