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1894~1972)가 1936년 12월 11일 양위를 선언했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원 없이는 내가 바라는 바 왕으로서의 의무와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가 사랑한 여인은 한 번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 유부녀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 1896~1986)이었다. 양위 직후 영국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된 윈저 공작 에드워드는 오스트리아로 출국,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고 합류한 심슨과 이듬해 6월 프랑스의 한 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2차 대전 중 잠깐 영국에 머물렀으나 나머지 생애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냈고, 공작 부인 심슨은 그의 장례식 이후에야 버킹엄궁에서 지낼 수 있었다.
조지 5세의 왕세손 에드워드는 군(보병장, 총사령관)과 내각(재무ㆍ내무장관 등)에서 미래 국왕으로서 갖춰야 할 다양한 이력을 쌓은 뒤 1936년 1월 즉위했다. 미혼이던 그는 31년 한 행사에서 만난 심슨과 사랑에 빠졌다. 당시 심슨은 미국인 선박 중개인과 재혼한 지 3년째를 맞고 있었다. 둘의 밀애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 연애를 그렇게 진지하게 여긴 이들은 많지 않았던 듯하다. 에드워드는 그 전에도 연인들이 더러 있었고, 심슨도 당장 유부녀인 데다 앞서 미 해군 장교와 11년 결혼생활(1911~27)을 한 이력이 있었다.
즉위 직후부터 에드워드는 심슨과의 결혼을 추진했지만, 왕실, 특히 그의 어머니인 메리 여왕(조지5세의 부인)이 반대했고, 스탠리 볼드윈 총리 내각도 영국성공회 규칙 등을 들어 완강히 반발했다. 두 차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 평민을 왕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거였지만, 결혼은 하되 (심슨의) 신분은 결혼 전 상태를 유지해도 좋다는 에드워드의 귀천상혼(貴賤相婚ㆍmorganatic marriage) 제안도 ‘내각총사퇴’ 가능성까지 제기하며 수용하지 않았다. 당시 야당은 에드워드의 결혼을 지지했다. 정치적 여파를 우려한 내각과 왕실(조지6세)의 압력으로 에드워드는 사실상 강제출국- 입국불허 조치를 당했다.
2000년대 공개된 국가 비밀사찰 문건에는 심슨이 에드워드와의 연애 중에도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즐겼다는 등 ‘부적절한 행실’을 폭로하는 내용들이 있지만, 당시 정황상 악의적으로 과장ㆍ왜곡됐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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