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설명회 참석 포기” 일정 차질, 강추위에 벌벌
“아이 입시 문제로 서울에 갔어야 했는데 결국 포기했습니다.”
지난 8일 오전 강릉시 운산동 차량기지 인근에서 탈선한 강릉발 서울행 KTX열차에 올랐던 이모(49ㆍ여)씨는 “사고 직후 불이 꺼진 열차에서 승무원과 소방관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기는 했는데 그 뒤가 문제였다”고 볼멘소리부터 냈다. 그는 “소방버스를 타고 가까스로 강릉역으로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티켓 가격 환불에 대한 안내만 있을 뿐, 대체 교통수단을 찾지 못해 결국 아이 혼자 입시 설명회에 가야 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탈선 열차에서 가슴을 쓸어 내렸던 승객들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안이한 대처에 또 한번 고통을 겪어야 했다. 부상자들의 응급처치는 물론 이동차량 제공 등 후속조치가 더뎠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승객들은 인근 비닐하우스로 자리를 피했지만 영하 10도 안팎의 강추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취업준비생인 방모(22)씨는 “열차에서 나온 뒤 30분 이상 추위에 떨었고, 비닐하우스에서 1시간 가량을 기다린 뒤에야 대체 수송버스가 도착해 일정이 꼬였다”고 말했다.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하던 김모(53)씨는 “안전하고 빠르다고 해 고속열차를 탔지만 결과는 완행버스를 타는 것보다 못했다”며 “이러면 누가 열차를 이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 탓에 중요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가족과의 시간이 무산되는 등 즐거워야 할 주말이 악몽으로 변한 셈이다.
코레일측의 수준 이하의 사후 조치에도 비난은 쏟아졌다. ‘다친 승객이 진료를 원하면 가까운 역에 문의하라’는 성의 없는 문자 전송에 이어 사고 현장엔 단 1명의 여성 승무원만이 피해 수습에 나섰기 때문이다. 탈선 시 열차가 기울어지며 발목을 다친 한 승객은 “아픈 사람한테 직접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와 어이가 없었다”며 “사고 대피 과정에서도 여성 승무원 한 명이 나와 안내하는 등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꼬집었다.
한편 코레일은 사고가 발생하자 문자 메시지와 스마트폰 응용 소프트웨어(앱) 등을 통해 예매 티켓 취소 시 전액 환불과 진부역~강릉역 셔틀 버스 운행을 공지했다.
강릉=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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