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 <41> 정운찬의 ‘한국경제 아직 늦지 않았다’
IMF 이후 두 권의 평론집 통해 한국경제 취약성 예리하게 분석
대기업 성과를 중소기업과 나누는 초과이익공유제 등 평가 받아
사회과학에서 경제학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경제학은 흔히 ‘사회과학의 여왕’이라 불린다. 이 말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다. 경제학이 사회과학 중 가장 과학적 분석을 강조한다는 의미도 있고,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만큼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도 존재한다.
우리 현대 지성사에서 경제학자들이 지식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백남운,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박현채, 서울시장을 역임한 조순, 그리고 영국에서 활동하는 장하준 등은 당대 시민들에게 친숙한 경제학자들이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지식인들인 만큼 많은 국민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왔다.
그런데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이렇게 높은 것에 비해 경제학자들의 현실참여적 글쓰기는 정작 활발하지 않다. 그 까닭은 경제학이 갖는 학문적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경제학의 발전 과정에서 전문적 글쓰기가 강조돼온 반면에, 현실 문제를 두고 발언하는 것에 대해 경제학계 안에선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경제학의 경향을 주목할 때 앞서 말한 경제학자들은 예외적인 존재들이었다. 이들 외에도 경제학자로서 현실참여적 글쓰기를 활발히 벌인 이들로는 한신대 교수였던 정운영, 서울대 명예교수인 이준구, 그리고 역시 서울대 명예교수인 정운찬을 꼽을 수 있다.
정운찬의 지적ㆍ정치적 경력은 화려하다. 그는 서울대 교수이자 총장이었고,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맡았으며, 한때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다. 여기서 주목하려는 것은 경제학자로서의 정운찬이다.
◇케인스주의자로서의 지적 이력
정운찬은 1948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컬럼비아대에서 가르치다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돌아왔다. 그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2년 서울대 총장을 맡으면서부터였고, 2009년에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7년 외환위기까지 정운찬은 강의와 연구에 충실한 전형적인 교수였다. 그 결과물들이 ‘경제통계학’ ‘금융개혁론’ ‘중앙은행론’ ‘거시경제론’ ‘예금보호론’ ‘화폐와 금융시장’ 등의 연구서였다. 그는 화폐와 금융 분야의 전문 학자로 일해 오면서 가끔 칼럼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해 왔다.
이 가운데 1990년대 후반 출간된 두 권의 평론집이 사회적으로 그의 존재를 알리는 데 작지 않게 기여했다.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1997)와 ‘한국경제 아직도 멀었다’(1999)가 그것들이었다. 특히 ‘한국경제 죽어야 산다’는 국제통화기구(IMF) 관리경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게 분석함으로써 화제를 모았다.
정운찬의 지적 이력에서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은 경제학자 조순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조순은 학부시절부터 인간적으로, 지적으로 가까운 스승이었다. 케인스는 학문적으로, 정책적으로 정운찬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였다. 정운찬이 스스로를 ‘미시적 케인스주의자’라 부르고 있듯 케인스는 정운찬에게 학자적 모범을 이루는 지식인이었다.
◇한국경제에 주는 충고
2007년에 출간한 평론집 ‘한국경제 아직 늦지 않았다’는 위에서 말한 두 평론집에 1999년 이후 쓴 칼럼들과 ‘2007 한국경제의 전망과 과제’, ‘IMF와 한국경제’ 두 편의 논문을 덧붙인 책이다.
정운찬이 말하는 미시적 케인스주의란 뭘까. 일반적으로 케인스주의라면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에서 시장이 실패하거나 경기가 부진할 때 정부가 나서서 수요 확대를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고 부양하는 것을 정책의 핵심으로 한다. 이런 거시적 케인스주의에 비해 미시적 케인스주의는 우리나라처럼 아직까지 시장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장을 형성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게 하는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정운찬의 미시적 케인스주의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나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는 다른 ‘개혁적 케인스주의’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운찬은 어떻게 봤을까. 먼저 김영삼 정부에 대해 정운찬은 세계화 전략 등 경제정책 전반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김영삼 정부에선 경제적 형평에 대한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운찬의 비판은 초점이 바뀌었다. 그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 국가경제가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고, 형평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시장의 활력을 이젠 중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본다.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한다’ ‘적자생존 원칙을 지켜야 한다’ ‘경제활동 투명도를 높여야 한다’ 등을 포함한 그의 발언들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제기됐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정운찬의 평가는 양가적이다. 한편에서 그는 김대중 정부가 유동성 위기 극복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정책적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덧붙인다.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그는 관료와 재벌문제를 꼽는다. 집권 초반기에 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음에도 관료와 재벌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제대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던 것을 안타까워한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정운찬의 평가는 김대중 정부보다 후하지 않다. ‘한국경제 아직 늦지 않았다’의 서론인 ‘2007년 한국경제의 전망과 과제’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그의 견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투자 부진과 사회 양극화를 한국경제의 핵심 문제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새로운 조정 장치의 구축과 사회적 자본의 성숙을 제시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에 취임한 정운찬은 의욕적으로 자신의 경제이론을 정책으로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그 실제적 성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와 정운찬의 ‘개혁적 케인스주의’는 애초에 양립하기 어려운 패러다임들이었다.
지식인으로서의 정운찬의 장점은 일종의 균형 감각이다. 그 균형은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의 문제들을 실현가능한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데 있다. 성장과 형평을 결합하되, 정부의 역할을 여전히 중시하는 정운찬의 경제이론은 오늘날에도 작지 않은 함의를 안겨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의 미래
국무총리에서 퇴임한 이후 정운찬은 ‘동반성장’의 전도사로 활동해 왔다.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 출범과 함께 위원장을 맡았고, 2012년 민간단체인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해 이끌어 왔다. 정운찬은 말한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같이 성장하자’는 뜻입니다. 즉 ‘더불어’ 살기 위해 네 것을 좀 줄여서 나한데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자’는 것입니다. (...) 파이를 더 크게 하고 분배도 공정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가질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 분배도 공정하게 해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살자는 것이 동반성장입니다.”
정운찬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빈익빈 부익부라는 시장경제의 그늘이다. 이러한 그늘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의 하나로 그가 내세운 것이 ‘초과이익공유제’다. 대기업과 함께 협력해 성과를 이룬 중소기업에도 기여도에 따라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배분하자는 이 제도는, 정운찬이 강조하듯, 시장경제의 병폐를 치료할 수 있는 정책의 하나로 평가할 만하다.
불평등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와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적 화두를 이뤄 왔다. 2014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IMF 역시 불평등 증가가 경제성장에 압박을 가하고 불안정을 부추긴다고 진단한 바 있다.
21세기 ‘뉴 노멀’의 세계경제에서 두 가지 경향은 분명하다. 첫째, 분배 및 복지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불평등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인더스트리 4.0’ 또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이 경제는 물론 사회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불평등 해소에 더해 혁신성장을 어떻게 일궈 나갈지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적 과제다. 이 두 과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야 말로 한국경제의 낙관적 미래와 비관적 미래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주경철의 ‘대항해시대’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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