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셔요.” “깊은 산 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요즘 내가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다. 까마득한 어릴 적 동요가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실타래를 따라 끌려나오 듯이 하나가 끝나면 또 하나가 이어 나온다. “따따따 따따따 주먹손으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저기 가는 저 노인 조심하셔요.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 노랫말이 얼마나 따뜻한지.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그 옛날 상상은 얼마나 곱고 소박한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참 예쁜 노래들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며느리가 손자를 두고 갔다. 당분간 우리 집에서 돌보게 되었다.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에는 크고 푹신한 요를 깔고, 부엌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아기용 매트를 깔았다. 손자의 동선을 따라 가구까지 옮기고 나니, 집 전체가 손자 중심이다. 영국 친구 스텔라는 볼일이 있을 때마다 아이를 맡기는 아들며느리 얘기를 하면서, “걔들은 우리가 개인생활이 없는 줄 안다”고 했던 게 생각난다. 손자 중심이 된 세상에서 나의 하루는 다 사라졌다.
새로 나오는 윗니가 근질거리는지, 아랫니와 맞대어 잇몸을 지글지글 간다. 두 볼이 살짝 튀어나오고, 양쪽 턱은 네모가 된 얼굴이 무척 귀엽다. 어른들은 싫어할 퉁퉁 부은 눈과 뽀송뽀송 부은 아침 얼굴이 예쁘기만 하다. 다시 젊은 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도 재미있다. 손자 이름을 부르는 대신, 가끔 내 딸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할머니가 해줄게”가 아니라, “엄마가 해줄게”라는 소리에 놀라면서도 혼자 웃는다. 앉아서 놀거나 기어 다녀도 좋으련만, 8개월 밖에 안 된 것이 자꾸 붙잡고 일어서고, 뒤뚱뒤뚱 흔들며, 휘청휘청 위태롭게 걸어 다니니, 졸졸졸 따라다니는 할머니는 여간 바쁜 게 아니다.
숟가락으로 이유식을 떠먹이며 “아, 아” 하면서, 입은 내가 벌린다. 관심을 끌려고 온갖 동작을 만들고, 별의별 소리를 낸다. 할머니가 손자 재롱을 보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손자 앞에서 재롱을 떠는 격이다. “우준아, 우준이 어디 갔지?”, “까꿍”, “짝짝꿍 짝짝꿍”, “곤지곤지” 등 내가 자라면서 들은 말과 아이들을 키울 때 했던 그 말만 나오는 것이 참 궁색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 말을 듣고 자랄까?
아들이 어릴 적, 미국에서 살 때다. 미국교회의 주부모임에 간 적이 있다. 아이들을 맡아주는 시설 덕분에 엄마들에게는 모처럼의 자유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은 엄마 없이 익숙지 않은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라 울기부터 했다.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에게도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는 한 미국 여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 우리는 어디를 가고 있으며, 이제 무엇을 할 것이며, 엄마는 언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라고 했다. 아이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운다고 했다.
근거 없고 허망한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고, 거짓말도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다. “호랑이가 잡아간다.”라는 말은 너무 구식이지만, 어릴 적 나도 들었던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와 “경찰 아저씨가 이놈, 한다” 같은 말은 젊은 엄마들도 흔히 했다. 나는 애꿎은 할아버지와 호랑이와 경찰은 들먹이지 않았다. 외출할 때는 돌아오는 시간을 말해줬고, 그 시간에 돌아왔다.
손자의 잠버릇은 고약했다. 음정 안 맞는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들면서, 온갖 자장가를 다 부르며 재워주었는데도 금세 일어났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하는 애잔한 자장가부터 “잘 자라, 잘 자라, 우리 아가야”의 슈베르트 자장가까지. 할머니에서 엄마로 그리고 나까지 전해 내려온 구전 자장가가 “자장 자장 자장”하면서 내 입에서 절로 나올 때, 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밤에도 몇 번이나 깨고, 낮잠도 오래 자지 않는 손자에게 설명했다. “네가 잠이 올 때, 너를 안아주는 것은 하겠는데, 이제 너를 안고 일어서서 흔들며 돌아다니는 것은 안하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정말 힘이 들고 허리가 아프다”라고도 했다. 그리고 “잘자고, 푹 자고, 자고 일어나면 착하지”라고 했더니, 곁에 있던 남편이 다시 설명하라고 했다. “착하지는 빼라”고. “그래야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 수 있다”면서.
나는 딸에게 “돈 아끼라”고 하는데, 남편은“그냥 쓰라”고 한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많은 탓이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은데도, 내가 하는 말은 그들과 똑같다. 버릇처럼 익숙해진 것들도 의심해봐야 한다. 늘 듣던 말들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나도 이제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사람이고 싶다.
‘이제 더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먼저 잘 보이려고 애쓰는 일도 줄어들 것이며, 내 몸과 마음을 전부 걸어버리는 멍청한 사랑도 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 내 곁에 와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흔들리지 않으며 피해보면서까지 잘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평소에 나를 좋아해주고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에게 좋은 행동으로 보답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고 괜찮은 사람일 것이다.’ - 흔글, ‘내가 소홀했던 것들’
이진숙 전 ‘클럽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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