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줄소송 태풍이 온다] 전문가 입장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제소 가능성이 있더라도, 과거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잘못이 있다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ISD분야 전문가들은 대부분 우리 정부가 ‘ISD’의 주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ISD 제소 가능성이 두려워 과거의 잘못을 방치할 수는 없다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 하지만 ISD가 국내 공공정책 결정에 큰 제약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향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내 투자자의 해외투자 보장과 외국인 투자자 유치를 위해서는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김준기 ISD 중재 재판관 “폐기보다는 보완”
ISD 중재 재판관에 선임된 김준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ISD 제소 가능성이 있더라도 과거 잘못된 정책들에 대해선 조사와 수정이 당연하다”며 “중요한 건 정부의 일관되고 투명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ISD가 독소조항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ISD는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투자 보장조치인 만큼 폐기하기보단 보완해 활용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초 한국인으론 두 번째로 ISD 중재재판관에 선임됐다. 당시 그가 맡은 사건은 러시아 엔플러스 그룹 자회사인 케아크가 몬테네그로 알루미늄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분쟁이다. 케아크는 몬테네그로 정부를 상대로 7,500억원 배상을 요구하는 ISD를 제기했다. 그는 “ISD 중재재판부 재판관은 총 3명으로 투자자와 정부 측 각 1명, 그리고 중립적 의장으로 정해져 공정성이 확보돼 있다”며 “정부가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폈다면 전혀 불리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ISD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를 보호받을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투자자들이 이미 전 세계에서 ISD를 통해 보호받고 있다”며 “선진국의 경우도 공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ISD에 제소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ISD 제도에서 재판 시간과 비용 등 개선할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2012년 우리 정부에 제기한 ISD 손해배상 청구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 정부가 해당 ISD 소송 대응을 위해 2013년~2017년 쓴 비용이 432억5,500만원에 달한다. 김 교수는 “ISD 재판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그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기호 민변 국제통상위원장 “폐기해야”
송기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장은 “미국 유럽 등 국제 추세에 맞춰 ISD를 조속히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 변호사는 “제조업과 금융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ISD 제소가 이뤄져 우리나라 경제적 자율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며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 재판관 3명이 우리나라 공공정책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도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ISD를 폐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은 ISD 대신 공동 투자법원 제도를 도입했고, 미국은 최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으로 타결한 ‘미국ㆍ멕시코ㆍ캐나다 협정(USMCA)’에서 ISD 제도를 폐기했다. 그는 “싱가포르 같은 경우 토지 수용에 대해선 ISD를 못하게 해놓은 반면 우리나라는 이것도 열어 놓았다”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제주도가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한 것 역시 한중 FTA에 따른 ISD 제소를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5조원대의 ISD를 제기한 것과 관련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없었다는 주장을 이제라도 집중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송 변호사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인수 당시에 이미 골프장과 같은 ‘비금융 자회사’를 소유하고 있어 적법한 자격을 상실했다”며 “론스타는 ISD 제소 자격조차 없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최근 론스타와 정부 간 ISD 진행 상황에 관한 정보 공개 청구를 요청했다. 이 건은 2016년 2월 최종 변론이 끝났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정부가 중대한 국가 소송에 대해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패소할 경우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일인 만큼 정부가 비밀주의로 일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안덕근 교수 “ISD 신중하게 다루면 유익”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분야 육성을 위해 필수적인 글로벌 투자 유치를 위해선 국내에서 ISD가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의 ISD 대응은 신중하고 조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ISD는 국가 정책과 관련한 소송이어서 설익은 정보 유출은 시장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론스타의 ISD 소송 관련 정보를 우리 정부가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정부가 ISD 재판 과정을 수시로 공개하면 시장이 결과를 예단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ISD 중재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쓸 시간과 노력이 여론을 무마하는 데 허비되면 오히려 재판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안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ㆍ멕시코ㆍ캐나다 협정(USMCA)’에서 ISD를 폐기한 건 미국 기업들이 그동안 ISD 제도를 믿고 멕시코, 캐나다에 생산공장을 세우자 이를 막기 위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며 “미국 공공정책을 보호하려거나 ISD 제도의 부작용 때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론스타가 제기한 ISD 건에 대해선 이미 2016년 최종 변론까지 끝났기 때문에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지난 7월 제기한 ISD 건과 관련해선 “소송 자격 등 절차적인 문제부터 모든 가능한 방어 논리를 정부가 미리미리 세워나가야 한다”며 “엘리엇 건은 법적인 전략을 적절히 준비하면 유리한 판결을 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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