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사로 꼽히는 법원행정처장 출신의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실무를 총괄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전직 대법관이라는 점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6일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진행한 뒤 이튿날 새벽 영장을 기각했다. 임 부장판사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구속의 적절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고영한 전 대법관 영장심사를 진행한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도 “구속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두 전직 대법관이 혐의를 부인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공범관계에 있는 임 전 차장이 이미 같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임 전 차장의 공소장 범죄사실 가운데 △강제징용 사건 등 다수 재판개입 △법관 사찰 △공보관실 운영비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 28개 혐의는 박 전 대법관과,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사모 와해 △정운호 게이트 수사 대응 △부산 법조비리 관련 재판 개입 등 18개 혐의는 고 전 대법관과 공모해 이뤄진 것이다.
검찰은 법원 판단이 부당하다며 즉각 반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서,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며 “하급자인 임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상급자들인 박병대, 고영한 전 처장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향후 검찰은 기각사유를 검토한 뒤 추가 보완수사를 거쳐 영장을 재청구할지 검토할 방침이다. 당초 12월 중순으로 예상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환일정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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