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들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게 되면서 법원은 온종일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법농단 사태 핵심인물로 꼽히는 박병대(61)ㆍ고영한(63) 전 대법관이 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영장심사를 받은 것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검찰이 지금까지 열 올려가며 수사한 게 다 뭐 때문이겠냐”며 “정말 이 지경까지 오는 것을 보니 참담하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법원 내부적으론 사법농단 사태 실무책임자 격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됐고,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두 전직 대법관들이 공범으로 적시된 만큼 예정된 수순으로 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를 두고 검찰의 법원 망신주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도주의 우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거지도 일정한데 굳이 영장까지 쳤어야 했나 싶다”며 “검찰 입장에서야 손해 볼 게 없지만, 법원은 이래저래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도 “두 사람 영장을 동시에 청구한 것도 법원에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전략”이라며 “검찰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말했다. 이미 사법농단 연루자들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를 법원이 여러 차례 기각하면서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만큼,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을 동시에 청구한 데는 검찰의 교묘한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간 법관들이 사법부 행정에 지나치게 무관심했던 게 아니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고법의 또 다른 판사는 “대부분의 판사들은 재판만이 본연의 업무라 생각해 행정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며 “다소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부분이 무엇이고 이를 재정비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 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 지법의 한 판사도 “우리의 무관심이 일을 키운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다”며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결국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만큼, 사법농단 연루자들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과 동시에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판 외의 행정 업무에도 보다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태를 겪으며 양 갈래로 쪼개진 법원 내부에 대해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지법의 또 다른 판사는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나 법관 탄핵 등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면서 평판사와 부장급 이상의 판사, 진보적 성향을 가진 연구모임에 포함된 사람과 아닌 사람 등으로 법관들이 갈라졌다”며 “서로에 대해 깊어진 감정의 골을 메우는 게 사법부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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