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국 이상이 관여된 영토분쟁이 벌어지면, 해당 지역과 직접 관련 없는 국가도 하나둘 끼어들게 마련이다. 중동 셰바팜스 분쟁의 경우가 그렇다. 원래 분쟁 당사국이던 시리아와 레바논 중 시리아는 손을 뗀 지 오래고, 오히려 무력으로 땅을 점거한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유혈사태를 벌이며 20년 가까운 분쟁을 해오고 있다.
셰바팜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총면적 22㎢의 농장지대다. 엄밀히 이 지역은 시리아 영토였다. 1920년대 프랑스 식민지배 당시 지도에도 시리아 땅으로 표기됐다. 다만 해당 시기 거주민들이 스스로 레바논에 속한다고 생각해 법적ㆍ행정적 사무를 레바논 지역에서 처리했는데 1946년 시리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면서 국경논란이 일었다. 결과적으로는 1964년 양국 국경위원회가 셰바팜스 지역을 레바논의 영토로 인정했다.
진짜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 1967년 이 지역과 아무 관계없던 이스라엘이 제3차 중동전쟁 와중에 시리아의 골란고원과 함께 이곳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시리아로부터 어렵게 영유권을 인정받았던 레바논 입장에서는 날벼락이었다. 레바논에서 활동하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등 게릴라 조직이 이스라엘군을 공격했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셰바팜스 너머 레바논 남부 땅까지 파고들었다.
이후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부당하게 점령한 레바논 영토를 해방시키겠다”고 투쟁에 나서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국제사회까지 등을 돌리자 1998년 이스라엘은 어쩔 수 없이 레바논으로부터의 이스라엘의 철수를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 425호를 승인했다. 그러나 떠나오면서도 “셰바팜스는 유엔이 정한 블루라인의 밖에 있다”며 수십만 개 지뢰를 매설하고, 방위군을 주둔시켰다. 본토 방어를 이유로 사실상 셰바팜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 간에는 계속해서 셰바팜스 영유권을 차지하기 위한 무력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2006년에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해 한 달에 걸친 전면전을 치렀고, 2015년에는 6명의 사망자를 낸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에 헤즈볼라가 즉각 보복에 나섰다. 이때 생겨난 사상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 당초 조용했던 분쟁이 유혈사태가 벌어지는 시끄러운 분쟁으로 확대된 것이다.
한편 시리아는 셰바팜스에 대해 레바논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셰바팜스가 이스라엘 점령지인 골란고원에 북쪽에 인접해 있기는 하지만, 해당 지역에 대한 시리아와 레바논의 합의가 이미 오래 전에 이뤄진 만큼 이스라엘 주장의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원 분쟁국인 시리아는 물론 유엔까지 나서 ‘완전한 철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받아들일 태도가 아니다.
이슬아 인턴기자ㆍ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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