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2018 대기업 지배구조 현황’ 발표
총수일가 이사 등재비율 감소 15%에 그쳐
대기업 총수 일가의 책임 경영이 4년 연속 후퇴했다. 경영상 법적 책임을 지는 계열사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는 비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이들의 독단과 전횡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가 침묵하는 관행은 그대로다. 상장사 이사회 안건의 99%가 원안대로 가결됐다. 다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기관투자자 의결권 행사지침) 등의 영향으로 대기업 경영에 국내 기관투자자가 주주로서 내는 목소리는 다소 커지고 있다.
◇경영책임 기피하는 총수일가
6일 공정거래위원회의 ‘2018년 대기업 지배구조 현황’에 따르면 총수가 있고 최근 4년(2015~2018년) 연속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21개 집단 계열사 1,006곳 가운데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15.8%(159곳)에 그쳤다. 총수일가 이사등재 비율은 2015년 18.4%→2016년 17.8%→2017년 17.3% 등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경영(이사회 의결)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는 총수일가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총수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는 5.4%(54곳)에 불과했다. 더구나 한화 현대중공업 두산 신세계 등 14개 그룹은 총수가 이사로 등재된 계열사가 한 곳도 없었다.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를 맡고 있는 곳은 그룹 핵심 계열사나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회사인 경우가 많았다. 총수가 있는 49개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가운데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총수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 혹은 20% 이상인 비상장사) 217곳에서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 비율이 65.4%(142곳)에 달했다. 이는 비(非)규제 계열사(12.3%)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더욱이 총수 2ㆍ3세가 이사로 등재된 계열사(97곳) 중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53.6%(52곳)나 됐다. 자산 2조원 이상인 그룹 ‘주력회사’에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한 비율은 46.7%(107곳 중 50곳)였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이사 등재비율과 일감 몰아주기 간 연관성은 뚜렷하지 않다”면서도 “다만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서 일감 몰아주기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형식적으로 작동하는 이사회
총수일가의 경영 ‘독주’를 제어할 사외이사들은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 최근 1년간(2017년5월~2018년4월) 대기업 상장사 253곳의 이사회 안건 5,984건 중 사외이사 반대 등으로 원안이 가결되지 않은 건은 26건(0.43%)에 불과했다. 아예 부결된 안건은 고작 8건(0.13%)이었다.
게다가 그룹 내 계열사간 대규모 내부거래 안건(295건ㆍ이사회 내 설치된 내부거래위원회 안건 포함)에 대한 심의도 면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내부거래 안건(279건) 중 수의계약 사유를 기재하지 않은 안건도 81.7%(228건)나 됐다. 또 시장가격은 어느 정도 수준이고 법적 쟁점은 무엇인지 등 거래 관련 검토사항이 별도로 기재되지 않은 안건도 63.4%(187건)로 집계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안건 내용이 부실해 충실한 심의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내부거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의사결정 과정만 거친 내부거래는 불법 행위와 연계됐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대기업 이사회 결정에 반기를 드는 주주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최근 1년간(2017년5월~2018년4월)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대기업 상장사 205개사의 주주총회(안건 1,331건)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했는데, 반대 비율이 9.5%였다. 이는 작년(5.8%)보다 3.7%포인트나 증가한 수치로, 해외 기관투자자 반대비율(10.7%)에 육박한다. 국민연금 등이 잇따라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결과로 풀이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투자자들이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충직한 집사(steward)처럼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