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D 줄소송 태풍이 온다]
“강대국에 유리” 논란 불구 한미FTA 재협상서 결국 유지
“투자자ㆍ국가소송제도(ISD)는 체결된 6개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81개 투자협정에 모두 포함된 글로벌 스탠더드다.”
법무부가 한미FTA 발효 4개월을 앞둔 2011년 11월, 대표적 독소조항이란 비판을 받는 ISD에 대한 해명이다. 그간 ISD로 인한 제소가 한 건도 없었고, 정당한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배상 책임이 없다며, ISD 조항이 위해 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후 7년이 지난 현재 ISD는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ISD 대체 뭐길래
ISD는 해외에 투자했다가 해당 국가의 부당한 제도나 정책, 조치 등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 중재 절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개발형 투자를 할 때, 자국 기업 또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고안됐다. 저개발국가들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데다, 민족주의를 표방한 정권이 들어서면 외인 투자자의 자산을 몰수하는 일이 벌어지자 고안해 낸 투자 안전장치다.
1966년 ‘국가와 다른 국가의 국민간에 투자분쟁 해결에 관한 협약(워싱턴협약)’이 마련됐으며 세계은행 산하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미국 워싱턴D.C에 설립해 재판소 역할을 하도록 했다. 선진국들은 투자를 유치하려는 국가와 협정을 맺을 때 ISD 조항을 포함시키다 보니 현재 회원국이 156개국으로 늘어나 있다.
한국은 1967년 ICSID에 가입했지만, 전 국민에게 알려진 시기는 2007년 한미FTA를 맺으면서다. 당시 일부 통상전문가들은 한미FTA의 대표적 독소 조항으로 ISD를 비판했다. 한국적 특성상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과거 정부의 정책 또는 규제 등이 크게 변화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국 기업들이 한국을 치명적 공격할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2007년 4월 ‘ISD 반대는 세계화를 하지 말자는 것’이라는 제목의 청와대 발 자료를 통해 “ISD는 세계적으로 보편적 투자자 보호제도로 정착된 제도이며 (한국이) 칠레ㆍ싱가포르ㆍ유럽자유무역연합 등 3개의 FTA는 물론이고 일본과 유럽 국가 등 세계 80여개국과의 투자협정에서도 도입한 방식”이라며 “독소조항론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국제사회가 독에 감염되어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고 옹호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실적 남기기로 성급하게 체결했다”며 정부와 여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야당이 된 민주당이 태도를 바꿔 “국익에 배치된다”며 재협상 없이는 비준 불가를 외치기도 했다. 논란 끝에 2011년 12월 국회에서 ‘한미 FTA의 투자자ㆍ국가 소송의 폐기ㆍ유보ㆍ수정을 위한 재협상’ 추진을 여야 합의로 결의하게 됐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 역시 한미 FTA 재협상 불가 방침을 확정해 ISD는 유지됐다.
◇왜 독소 논란 반복되나
ISD는 근본적으로 강대국에 유리한 제도이다. 우선 재판소 역할을 하는 ICSID가 속해 있는 세계은행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결국 중재 판정이 선진국에 유리하게 이뤄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들이 ISD에서 탈퇴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은 투자협정 등에서 ISD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과정에서 회원국들 사이에 ISD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중재 판정을 좌우하는 의장 중재인 인력풀이 특정 국가가 치중해 있다. ICSID 중재 판정부는 분쟁 당사자가 1명씩 선정하는 중재인과 양쪽이 합의해 선정하는 의장 중재인 등 3명으로 구성되는데, 중재인 후보 명단에 한국인은 10명도 안 되지만 미국인은 200명을 넘는다. 공교롭게도 미국 정부는 ISD에서 패소한 적이 없다.
이런 문제가 공론화돼 국내에서도 ISD를 반대하는 주장이 컸지만, 지난 9월 발표된 한미FTA 재협상 결과 ISD는 미국 뜻대로 유지됐다.
◇정부 기관 간 의견 통합 어려워
한국 정부를 향한 ISD는 2012년 11월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46억9,700만달러(약5조2,329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7번 제기됐다. 올해 6월에는 이란 다야니 가문이 제기했던 청구금액 935억원 중 730억원을 지급하라고 우리 정부가 패소했다. 7, 8월에는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과 엘리엇이 1조원이 넘는 배상금액을 요구하며 중재신청을 제기했다. 어느새 세계에서 ISD 손배 청구를 가장 많이 받은 정부는 한국 정부가 되고 말았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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