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당연한 일’을 했다. 그는 지난주 ㈜LG 주식에 대한 상속세 7,161억원을 내겠다고 국세청에 신고했다. 법이 정한 대로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함께 고(故) 구본무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은 두 딸의 상속세를 합치면 9,215억원이다. 이전 상속세 최고 기록은 2003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일가의 1,830억원이었다. 한꺼번에 5배를 뛰어 넘는 기록 갱신이다.
구광모 회장은 이번에 물려받은 재산의 약 60%를 세금으로 낸다. 우리 상속세율은 세계적으로 높다. 상속 재산이 30억원을 넘으면 세율이 50%다. 특히 물려받는 재산이 기업 최대주주 지분일 경우, 20~30%를 할증한 액수에서 절반을 뗀다. 구광모 회장은 지분 가치로 1조1,935억원 어치(㈜LG 전체 주식의 8.8%)를 물려 받았는데, 여기에 20%를 할증한 1조4,322억원의 절반을 내는 셈이다. 생긴 돈의 60%가 세금이라면, 누구라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 만하다.
상속세는 찬반이 첨예한 세금이다. 재계에선 “한국처럼 높은 나라가 없다” “기업가의 사업의지를 꺾는다”며 아예 폐지까지 주장한다. 하지만 “축적한 부에 대한 마땅한 세금”이라는 여론의 지지가 여전하다. 당장 법이 바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LG는 이번 상속세와 관련해 흔한 보도자료 한 장 내지 않았다. 이미 예고한 일이었다며 출입기자들에게 ‘납부했다’는 짧은 문자만 날렸다. LG는 “상속인들이 관련 법규를 준수해 성실하게 상속세를 납부할 계획"이라고만 설명했다. 짧은 문자에 담긴 속내를 알 수는 없지만, 구광모 회장은 적어도 이번 상속세를 피할 수 없는 일로 여긴 듯하다.
구광모 회장에 조금 앞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당연한 말’을 했다. 그는 지난주 “아들에게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룹 경영은 물론, 지분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년 1월부터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깜짝 발표를 한 뒤, 당장 비워 둔 코오롱의 총수 자리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던 차에 나온 대답이었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건 세상의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회장의 발언은 당연했지만, 한편으론 그가 대기업 총수라는 면에서 매우 놀라웠다.
두 총수의 당연한 언행은 자체로 무게가 작지 않다. 역설적으로, 당연하지 않은 일이 워낙 많아서다. 높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갖은 묘수를 짜낸다. 재산을 생전에 싸게 증여하거나,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로 재산을 불려주고, 세금이 면제되는 소유 재단으로 지분을 돌리기도 한다. 모두 위법은 아니라 해도, 당연해 보이지는 않는 행위다. 지나치게 예외가 없어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대기업 경영권을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넘기는 게 선진국에선 흔한 일이 아니다.
상속세를 마련하지 못해 가문의 경영권을 끝내 지키지 못한 쓰리세븐(손톱깎이), 농우바이오(종자), 유니더스(콘돔) 등 업계 대표 업체들의 사례를 우리는 안다. 일부에선 안타까움도 샀지만, 그들이 바보라서 그랬던 건 아니다. 상속세가 달갑든, 달갑지 않든 ‘법이 그러니 군말 없이 내겠다’는 구광모 회장의 행동은 그래서 묵직하다. 앞으로 재벌 기업에 상속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구 회장의 사례는 무시할 수 없는 선례로 남을 것이다.
이웅열 회장이 정말 아들에게 지분과 경영권을 넘기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회장의 아들은 장차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훨씬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대기업에서 자녀 세대의 능력이나 자질이 의심받는 경우, 이 회장의 발언 역시 두고두고 상기될 것이다.
구광모 회장의 상속세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존경스럽다. 앞으로 같은 조건이면 LG 제품을 사겠다.” 구광모 회장이 그 어떤 광고보다 훌륭한 광고를 했다.
김용식 산업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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