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가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조건부 허가했다고 밝혔다. 원 지사는 기자회견에서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고 설명했다. 2005년 관련법 제정 이후 오랫동안 논란이 돼 왔던 영리병원 설립이 13년 만에 일단락된 셈이다. 하지만 의료 영리화에 시민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여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당초 원 지사가 녹지병원 허가 여부를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에 넘겼고, 지난 10월 큰 차이로 불허 결론이 나오면서 시민 의견대로 따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원 지사는 이날 “제주의 미래를 위해 고심 끝에 허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지역경제 살리기 차원뿐 아니라 불허 시 외국 투자 위축과 국제소송 비화, 한중 관계 악화 우려 등의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런 현실 상황을 마냥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는 점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중국기업에 투자승인을 해줘 의료설비와 운영인력까지 확보한 상태에서 병원 문을 열지 못한다면 국제 신인도 실추로 인한 피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리병원 운영에 따른 의료 공공성 악화다. 지금까지 영리병원 설립 시도가 번번이 무산된 것도 의료공공성 붕괴에 대한 근본적 우려 때문이었다. 국내 대형병원처럼 비영리병원은 병원운영 이익을 의료시설 확충과 연구비 등 병원 설립 목적에 맞게 재투자하는 반면 영리병원은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한다. 투자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만큼 의료비 상승과 의료 양극화, 건강보험체계 훼손 등의 우려는 수긍할 만하다. 원 지사도 이런 점을 감안해 내국인 진료 금지를 허가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영리병원은 앞으로 법적으로 허용된 8개 경제자유구역으로 번져 나갈 가능성이 크다. 녹지국제병원의 운영 여부가 중요한 가늠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 찬성 쪽 주장처럼 외국인 의료관광 활성화라는 효과를 최대화하면서도 공공성 악화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리병원은 제주도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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