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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와 냉기 뒤섞인 지옥” 공포의 1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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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와 냉기 뒤섞인 지옥” 공포의 10시간

입력
2018.12.05 17:49
수정
2018.12.05 21:0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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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 열수송관 파열 사고 순간 

[저작권 한국일보] 백석역 온수배관 사고 복구작업 5일 오전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전날 저녁 발생한 지역 난방공사 온수 배관 파열 사고와 관련 작업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백석역 온수배관 사고 복구작업 5일 오전 고양시 백석역 근처에서 전날 저녁 발생한 지역 난방공사 온수 배관 파열 사고와 관련 작업자들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폭격이라도 당한 줄 알았어요.”

‘펑’ 소리와 함께 펄펄 끓는 물이 거리로 쏟아졌다. 땅 밑에서 터져 나온 물줄기는 건물 5층 높이(15m)까지 치솟은 뒤 한파에 몸을 웅크린 행인들을 순식간에 덮쳤다. 증기 때문에 사우나탕처럼 뿌옇게 흐려진 거리를 오가던 시민들은 난데 없는 열탕 세례에 화상을 입은 채 비명을 지르고 허둥지둥 대피했다. 4일 오후 8시40분쯤 경기 고양시 지하철3호선 백석역 인근 도로에서 발생한 ‘백석 열수송관 사고’를 시민들은 “열기와 냉기가 뒤섞인 지옥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지하에 있던 850㎜ 난방배관이 파열되면서 발생한 이날 사고는 시민들에게 ‘이전에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청천벽력과 같았다. 당시는 체감온도가 영하 5도까지 떨어지며 연신 ‘춥다’는 말로 행인들이 바쁜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을 무렵이다. 사고 현장 인근 떡볶이집 사장 박정혁(39)씨는 “갑자기 폭발 소리와 함께 건물에 대피 사이렌이 울렸고 금방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주민 조형욱(50)씨는 “갑자기 치솟은 굵은 물기둥이 건물 4, 5층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거리를 덮쳤다”고 덧붙였다.

열수송관 파열 현장 인근 지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열수송관 파열 현장 인근 지도. 그래픽=강준구 기자

바닥엔 끓는 물이, 공중엔 뿌연 증기가 가득 차면서 사고 현장은 구급차조차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아수라장이 됐다. 김밥가게를 운영하는 손만선(61)씨는 “터진 지 1분도 안돼 발에 화상을 입은 수십 명이 건물 뒤편 화장실로 가 발에 물을 뿌릴 만큼 아비규환이었는데, 도로에 물이 가득 차 구급차가 진입을 못 했다”고 했다.

실제 1시간가량 쏟아진 열탕이 일대 3만여㎡를 물바다로 만들고 성인 남성 무릎높이(약 50㎝)까지 차오르면서 사방에서는 “너무 뜨겁다” “살려달라”는 절규가 쏟아졌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부상자 백모(53)씨는 “도로를 덮은 물을 밟았는데 발목까지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순식간에 화상(2도)을 입었다”고 말했다. 상가 경비원 정모(65)씨 역시 “수증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더듬더듬 경비실을 나가는데 뜨거운 물을 디디면서 한 쪽 발에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아파트 상가에서 식당을 하는 정모(60)씨는 “무슨 불아 났나 싶어서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고 관리실엔 확인전화가 빗발쳤다”고 했다. 인근 주민들은 한때 ‘(지진 때문에)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불안에 떨었다.

당장의 뜨거운 물 세례를 피하자 이번엔 추위가 닥쳤다. 사고 여파로 인근 2,800여 가구에 난방용 열 공급이 중단되면서 난방이 뚝 끊긴 것. 5일 오전 7시55분 임시 복구가 되면서 열 공급이 재개되기까지 10시간 넘게 집 안에 있던 전기장판 등에 기대 추위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하필 4일 오후 11시부터 경기 전역에는 올 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발효됐다. 주민 허희정(78)씨는 “방바닥이 얼음장같이 차가웠고, 너무 추워서 점심시간이 되도록 몸을 일으키지 못 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노인정 회장인 박찬(85)씨는 “바닥을 맨발로 걷는 게 힘들 정도라 노인정으로 갔는데 사정은 마찬가지였다”라고 말했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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