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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하정우의 3만보

입력
2018.12.05 18:00
수정
2018.12.07 16: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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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관리 좀 해 보겠다고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라는 걸 차고 다닌 지 2년 정도다. 스마트 기기란 그 정의상, 사람이 아니라 기기가 스마트하단 얘기다. 고로 기기 자체엔 다양한 기능이 있겠으나, 내겐 딱히 시계 이상의 역할은 없는 것 같다. 시계가 너무 흔하다 보니 시계 역할도 얼마나 하는지 모르겠다. 기능으로 치자면 이런 걸로 건강을 챙긴다는 ‘자기 만족 제공’ 기능, 아니면 이 정도 움직였으니 오늘은 마음 편히 와장창 먹어도 되겠다는 ‘핑계 제공’ 기능이 제일 크다. 그런 건 스마트 기기보다 내가 더 스마트하다.

□ 배우 하정우가 걷기에 대한 책을 냈다. ‘걷는 사람, 하정우’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베스트셀러 목록에 슬쩍 걸어 들어갔단다. 어느 정도 걷나 싶어 봤더니 하루 3만보는 기본이요 10만보를 걷는 날도 있단다. 눈 뜨면 일단 8,000보 걷고, 제주 갈 일 있으면 김포공항까지 걸어가는 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그냥 걷는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자기가 저녁에 술 한잔 사겠다고 하면 친구들은 광명 같은 곳에서 아침부터 걷기 시작, 저녁쯤 하정우 집이 있는 서울 신사동 부근에 도착한단다. 그 술 맛, 기가 막힐 것 같다.

□ 굳이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구를 늘어놓지 않아도 걷기 예찬은 오래된 얘기다. 악성 베토벤이나 철학자 칸트는 산책 마니아들이었고, 생물학자 다윈은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자전거를 즐겼다. 이런 리스트는 끝이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유튜브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이족보행 로봇 ‘아틀라스’만 찾아봐도 그렇다. 사람처럼 걷는 로봇을 만들겠다며 그 똑똑한 과학자들이 30여년간 연구했다는데 여전히 뭔가 어색해 보인다. 운동화 하나 슥 신고 나가서 걷는 게 뭐 대수라고 말이다.

□ “인간에게 쉬운 건 기계에 어렵고, 기계에 쉬운 건 인간에게 어렵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이 말했다 해서 ‘모라벡의 역설’이라 불린다. 이건 진화의 역설이기도 하다. 뇌의 진화라고 하면 다들 ‘생각하는 기능’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더 앞선 것은 걷기, 뛰기 같은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능이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걷는다지만, 걷기는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채우는 것이기도 하다. 뭔가 풀리지 않아 답답하다면, 일단 멈추고 걷자. 스마트 따위야 기계 너나 해라. 우리 인간이 할 일은 방황이니까.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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