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나이가 많거나 저와 연배가 비슷한 세대는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노래를 아실 겁니다. 그 가사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갑돌이도 화가 나서 장가를 갔드래요. 장가간 날 첫날밤에 달 보고 울었드래요. 갑돌이 마음도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는 음음음 고까짓 것 했드래요.” 이 노래에서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각기 시집장가를 가고 그래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생각하며 울게 되지만 겉으로는 ‘그까짓 것’ 함으로써 문제를 넘어갑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이 노래를 인용한 것은 ‘까짓것’의 삶을 얘기하기 위해섭니다.
살아가다 보면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 있고 어리석게 사는 사람이 있으며 자신도 어떤 때는 지혜롭지만 어떤 때는 어리석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어떤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나를 터무니없이 비난합니다. 이럴 경우 지혜로운 사람은 그 비난에 대해 ‘까짓것’하며 작게 처리합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을 너무 크게 생각해서 엄청 분노하고 길길이 날뜁니다. 또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작은 문제를 너무 크게 만들어 해결치 못하는데 비해 지혜로운 사람은 큰 문제도 작은 문제로 만들어 해결해냅니다.
구약성서를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얘기가 나옵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적이고 그래서 성서를 잘 모르는 사람도 골리앗은 이기기 힘든 상대 또는 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골리앗은 거인입니다. 그런데 같은 골리앗이지만 이스라엘의 다른 장수들은 골리앗을 너무 엄청나게 생각하여 지레 지고 들어가지만 어린 다윗은 골리앗을 ‘까짓것’ 하였기에 감히 싸우러 나가고 고작 돌팔매로 골리앗을 때려눕힙니다. 어린 다윗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집니까?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도 다윗처럼 멋질 수 있고, 어떻게 큰 문제도 작게 만들 수 있느냐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떨어져서 보고, 떨어져서 상대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갔으면 그 거대한 골리앗에 심리적 두려움에 압도당하고 물리적으로도 한 손아귀에 붙잡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은 적당하게 떨어져 있었기에 작게 볼 수 있었고 적절하게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집착을 하면 떨어질 수가 없고 집착을 하면 할수록 달라붙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돈에 집착을 하면 돈에 짝 달라붙어 돈밖에는 보이지 않고 돈 때문에 큰 근심 걱정에 싸일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침착하게 한 숨을 쉬고 한 걸음 떨어져서 돈을 바라보면 좋은데 이렇게 떨어져 보기 위해 있던 곳을 떠나 여행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거대한 빌딩도 산 위에 올라가 보면 작지요. 요즘은 자주 가지 못하지만 전에 제가 자주 산에 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북한산에 올라가 서울을 내려다보면 내가 저기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악다구니하며 살았구나 하며 잡고 있던 것을 ‘까짓것’하며 내려놓을 수 있었지요. 그렇습니다. 더 높은 곳에 가면 더 높은 가치가 보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가치 있어 보였던 것들이 무가치하거나 그리 대단하지 않게 됩니다. 높은 가치를 볼 수 있고 정신이 고양(高揚)되기 위해 역시 산을 오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12월이 되었고 한 해가 끝나 갑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한 해를 잘 보내고 새해를 가뿐히 맞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12월에 아직 나를 붙잡고 있는 것, 아니 내가 집착하여 붙잡고 있는 것들을 털어버리자는 뜻에서 ‘까짓것’ 영성을 한 번 읊어봤습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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