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두 달을 끌어온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4일 열렸다. 김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사법농단 사태를 두고 “전대미문의 상황이고 몹시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을 탄핵하는 문제에선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최근 상황을 계기로 저를 비롯한 법원 구성원 모두는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사법의 본질적 사명을 다시 절실하게 인식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법관을 비롯한 법률가들을 향한 ‘법기술자’라는 냉소는 아프지만 경청해야 할 국민의 말씀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해악을 척결해야 사법부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며 “사법행정이 재판 독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연루자들을 징계하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김 후보자는 ‘사법농단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실행해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던 분들을 재판에서 배제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의 질문에 “직무배제는 헌법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당한 근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김 후보자는 “지금 직무배제 불이익 처분의 근거가 될만한 면밀한 사실관계를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다”며 “그런 과정이 확립되기 전에 직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주저되며, 탄핵도 같은 취지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이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의 탄핵소추 검토 결의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동료 법관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한다”며 “법관 입장에서는 재판독립과 관련한 여러 문제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에둘러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관회의 구성이 진보성향의 판사들로 편향돼 있어 법원 전체의 목소리를 대변하기엔 부적절하지 않냐’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김 후보자는 “법관회의에 정치적 성향의 판사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법관회의는 법원 내부 문제에 대한 일선 법관들의 의사를 대법원장에게 솔직하고 진지하게 전달하는 통로”라며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국회에서 추진중인 특별재판부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특별재판부는 8월 박주민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안을 토대로 하며, 이는 대한변호사협회, 법원 판사회의,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특별재판부후보추천위원회가 현직 판사 6명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중 3명을 임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 후보자는 “재판부 추천 및 선정 과정이 공정하고, 선정된 사람이 훌륭하더라도 그에 관계없이 (재판을 받는 피고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며 “그게 향후 재판결과와 연관되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활동했던 법원 내 진보 성향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에서 활동한 이력 등을 토대로 ‘코드인사’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김 후보자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김 후보자는 “나를 제청하고 이에 동의한 분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분들과 개인적 친분이 없다”고 말했다. 인권법 연구회 활동에 대해서도 “적극적 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제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재판을 잘하기 위한 법관들의 연구모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유독 진보성향의 판결을 많이 했다는 지적에도 “법관의 재판을 진보적 혹은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편 그간 논란이 됐던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에 대해선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지켜야 할 도덕적 기준을 지키지 못한 점은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1994∼98년에 위장전입을 세 차례 했고, 92∼2002년에 두 차례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 다만 2005년 7월 이전 위장전입은 고위공직자 인사청문 대상에서 제외되고, 다운계약서 작성도 실거래 신고가 의무화된 2006년 이전의 일이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김 후보자는 지난달 1일 퇴임한 김소영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제청됐다. 대통령이 제출한 임명동의안이 10월 8일 국회에 제출됐으나, 한국당의 청문위원 명단 제출이 늦어지면서 20일 이내에 청문절차를 마치도록 규정한 인사청문회법의 법정시한을 넘겨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국회는 이날 여야 간 이견으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적격 의견을 낸 반면, 한국당은 다운계약서 등을 이유로 부적격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이 내년도 예산처리안 등과 연계할 경우 보고서 채택은 더욱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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