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항소심에 특정 판사 주심 요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옛 통합진보당 사건과 관련해 사건배당 시스템을 조작, 특정 재판부에게 맡긴 정황까지 드러나 사법농단 파문이 한층 커지고 있다. 재판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4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행정처가 통진당 의원들이 낸 지위확인소송 1심이 끝난 뒤 당시 항소심을 맡게 될 서울고등법원장에게 ‘사건이 접수되면 특정 재판부에 특정 판사를 주심으로 사건이 배당되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요구를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당시 행정처장이던 박병대 전 대법관 영장청구서에 이 같은 범죄 혐의를 적시했다.
통진당 의원들은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리자 법원에 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헌재와 권한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던 행정처는 1심 판결 전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지침을 전달했지만, 1심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2015년 11월 “헌재 결정을 법원이 다시 심리하는 것은 권력 분립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행정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후 행정처는 심상철 당시 서울고법원장에게 항소심 사건이 접수되면 행정6부로 배당해줄 것을 요구했고, 심 전 원장은 사건배당 전산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행정처 요구를 전달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통상 법원은 사건이 접수되면 전산시스템을 통해 재판부를 임의 배당한다. 하지만 서울고법이 전산상 아무 문제 없는 임의 배당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해당 사건이 정식으로 접수되기 전 사건번호를 미리 부여, 특정 재판부에 맡긴 것으로 조사돼 재판 공정성이 크게 의심받게 됐다.
행정처 요구대로 사건은 행정6부에 배당됐지만 얼마 뒤 인사이동에 따라 재판은 후임 재판장이던 이동원 현 대법관이 넘겨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법원이 의원직 상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취지를 밝힌 뒤 항소 기각 결정을 내렸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