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일본을 찾아 일본의 도로, 자동차, 자동차 문화 등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고 또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닛산 헤드쿼터의 도움을 받아 닛산 자마 공장에 자리한 '닛산 헤리티지 콜렉션'을 둘러볼 수 있었다.
닛산 헤리티지 콜렉션은 말 그대로 '닛산 브랜드'의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차량들을 모아둔 거대한 창고(개러지)다. 전시관이었다면 차량의 간격 등이 조금 더 여유롭겠지만 이 곳은 여러 차량들을 보관하는데 그 무게가 있는 곳이다.
동행한 닛산 헤드쿼터 관계자에 따르면 닛산 헤리티지 콜렉션에는 앞으로 더 많은 차량들이 보관, 관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닛산을 알리다
1960년대 등장한 닛산 세드릭과 글로리아는 형제차량이자 말 그대로 '닛산'이라는 브랜드 명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차량이었다. 이전까지의 닛산은 닷선 혹은 타마, 그리고 프린스 등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개별 브랜드의 네이밍을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닛산을 앞세우며 등장한 초기의 세드릭들은 당대 미국 자동차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받은 모습이다. 초대 모델인 세드릭 커스텀의 경우에는 수직으로 그려진 두 개의 헤드라이트를 앞세웠고, 1.9L 가솔린 엔진으로 88마력을 냈고, 4,510mm에 이르는 전장으로 대형 세단의 포지셔닝을 명확히 했다.
사진의 H31 타입의 세드릭 커스텀은 초대 세드릭 대신 더욱 큰 차체를 자랑하고 수평으로 구성된 듀얼 헤드라이트 유닛을 사용했다. 특히 휠베이스가 2,690mm까지 늘어나 당대 일본 차량 중 가장 긴 차량으로 기억되며 넉넉하고 안락한 공간을 자랑했다.
고급화에 나서다
세드릭과 글로리아가 선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며 닛산의 대표 주자이자 또 일본 시장 내에서 대형 세단으로 그 입지를 굳히게 되자, 닛산은 고급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세드릭 스페셜(1964)의 경우, 전장을 4,855mm까지 늘리고 보닛 위에는 마치 미국차량처럼 두 개의 금색 가니시를 더해 독특한 존재감을 연출했다. 휠베이스는 2,835mm로 늘어나고 엔진 또한 2.9L 엔진으로 115마력을 자랑했다.
그 뒤를 이어 1970년대에는 글로리아에 힘을 더했다.1970년 공개된 글로리아 슈퍼 디럭스는 앞서 말한 세드릭 스페셜처럼 전장이 긴 건 아었지만 고급스러운 소재와 옵션 사양을 개더 적용했 '오너드리븐'의 감성을 강조했다.
특히 보잇 아래에는 최고 출력 125마력을 내는 2.0L 6기통 엔진을 얹어 경쾌하면서도 강력한 가속력과 우수한 주행 성능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10세대까지 이어진 세드릭, 글로리아
70년대 이후 닛산 세드릭과 글로리아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대형 세단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토요타 크라운을 겨냥하고 지속적인 개선과 변화를 선보였다.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미국차와 닮은 이미지를 꾸준히 가져가며 당당하고 거대한 체격을 과시했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판매된 5세대 세드릭의 경우에는 사륜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템을 탑재해 상품성을 높였다.
그리고 이어진 Y30(6세대)는 각이 진 미국 스타일의 디자인을 더욱 강조했다. 특히 4,690mm의 전장과 1,690mm의 전폭 그리고 1,425mm의 전고를 갖춰 여유로운 공간을 암시했다. 사진 속 차량은 최고 출력 180마력을 내는 T V20터보 모델로서 뛰어난 주행 성능과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5-링크 서스펜션으로 안락한 승차감을 자랑했다.
한편 세드릭은 1996년, 택시 모델인 QJY31를 추가로 선보였다. 기능적인 부분으로는 7세대 세드릭인 Y31를 따랐지만 디자인 및 각요소에서는 더욱 클래식한 요소들을 더해 택시 모델의 존재감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 차량에는 최고 출력 82마력을 내는 2.0L 엔진이 탑재되어있었다.
60년대부터 70년대와 80년대를 모두 거친 세드릭과 글로리아는 이후로도 10세대까지 이어지며 그 명맥을 계속 이어갔다. 게다가 9세대인 Y33에서는 터프함이 돋보이는 그란투리스모 사양이 새롭게 추가되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세드릭과 글로리아는 데뷔 이후 잠시 크라운을 제압하고 일본 대형 세단 1위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언제나 '크라운에 밀리는 형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2004년 세드릭, 글로리아 등 모든 차량들이 '푸가'로 통합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일보 모클팀 -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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