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월급 반을 투자한다 해도
강남아파트 구입 66년 이상 걸려
3.3㎡ 당 1억원에 가까운 고급 아파트를 살 자금도 없고 그렇다고 비닐하우스촌까지 밀려나지도 않은 중산층의 최대 과업은 서울에서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주택 공급 확대와 부동산 억제 대책을 통해 이들의 내 집 마련 시기를 앞당겨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중간 소득의 가정이 13년 동안 연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서울에 집 한 채를 사기 어렵다는 통계는 이들의 꿈이 그저 꿈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내 집 마련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 통계 소득대비가격PIR(Price to Income Ratio) 지수가 지난 9월 서울에서 13.4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13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11.4에서 8개월 만에 2.0포인트나 늘어난 것이다. PIR은 특정 지역의 집값 평균을 연간 가구소득 평균으로 나눈 비율로, 집값이 연 소득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지표다. 지수가 13.4를 기록했다면 서울의 중간 소득 가구가 평균가의 주택을 사는 데 13.4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중간 소득과 집값은 통계청의 1분기 가계동향 조사(5월 발표)에서 서울의 소득별 5분위 배분 중 중간인 3분위 구간의 소득과 집값을 기준으로 삼았다.
중산층이 강남 등 서울 상위 20% 고급 주택을 소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면 현재 월급으로는 33년이 걸려도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 3분위 중간 계층이 상위 20%인 5분위 주택을 사는 경우를 전제한 PIR는 33.3을 기록했다. 2014년 1월에는 해당 PIR가 19.6였지만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수치가 뛴 것이다.
중산층에 조금 못 미치는 가구의 내 집 마련 꿈은 더욱 암담하다. 2분위 가구의 평균 서울 주택 구입 전제 PIR는 19.4, 가장 소득이 적은 1분위 가구는 무려 41.8이었다. 강남 주택 구입을 전제하면 2분위는 48.4, 1분위는 104.1이나 나왔다. 반면 가장 부유한 5분위 가구가 평균 주택을 구입한다고 전제했을 때 PIR는 5.7에 불과했다. 부유층은 6년도 안 걸려 서울의 평균 주택을 살 수 있는 반면, 저소득층은 이보다 7배나 많은 42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해외 주요 도시와 비교해도 서울의 PIR는 높은 수준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지난 5월 발표한 ‘글로벌 부동산 버블 위험 진단 및 영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작년 3분기 기준 세계 주요 도시의 PIR 가운데 LA(9.4) 런던(8.5) 뉴욕(5.7) 도쿄ㆍ싱가포르(4.8) 등은 서울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세계적으로 집값이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홍콩(19.4)과 베이징(17.1), 상하이(16.4) 등이 서울의 PIR를 웃돌았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번 통계는 월급의 절반을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집에 다 투자한다 해도, 서울에서 평균 월급을 버는 직장인이 평균치 아파트를 사는데 적어도 26년, 강남 아파트는 66년 이상 걸린다는 의미”라며 “2008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근 몇 달의 변동폭이 가장 눈에 띌 만큼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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