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논란을 빚어온 말레이계 우대정책인 ‘부미푸트라(Bumiputera)’ 완화 문제를 놓고 말레이시아 내부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3일 일간 더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야당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과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은 현지 이슬람 단체 등과 함께 오는 8일 수도 쿠알라룸푸르 시내 므르데카 광장에서 집회를 연다. 주최 측은 이번 집회에 수십만 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7월에도 쿠알라룸푸르 캄풍 바루 지역에서 말레이계의 권익 보호를 주장하며 집회를 연 바 있다. 당시에는 2,000여명이 참가했다.
이 집회의 표면적 이유는 정부ㆍ여당이 인종이나 피부색, 가문, 민족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ICERD)’의 비준을 막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난 5월 선거에서 61년 만에 정권을 빼앗긴 UMNO 측의 정치공세라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소식통은 “부미푸트라 때문에 무슬림들이 나태해지고, 말레이시아가 오늘의 모습에 머물고 있다는 공감대가 있고, 심지어 말레이계 내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소식통은 이 같은 분위기를 도시지역으로 제한했다. 시골이나 개발이 덜 된 지방에서는 부미푸트라를 여전히 원한다는 것이다.
신경제정책(NEP) 일환으로 1971년 본격화한 부미푸트라는 말레이시아 다수 종족인 말레이계에 입학 정원을 먼저 할당하고 정부 조달사업에서도 혜택을 주는 등의 내용이다. 당시엔 중국ㆍ인도계와의 소득격차 해소를 위한 ‘경제적’ 목적의 정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레이 내 무슬림들의 정체성 문제로도 확장되는 등 변질됐다.
이 정책 덕분에 말레이계의 사회ㆍ경제적 지위는 향상됐으나 민족별 격차가 완화된 뒤에도 계속 유지돼 중국계(20.8%)와 인도계(6.2%)로부터 비판받아 왔다. 또 부미푸트라 때문에 인구 60% 이상을 차지하는 말레이계의 나태를 불렀고, 이로 인해 말레이의 국가 경쟁력이 저하, 도태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이끄는 말레이 정부는 논란이 커지자 최근 ICERD를 비준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는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인종에 기반한 정책은 폐기돼야 한다”고 밝히면서 말레이계의 반발을 부른 바 있다. 이후 그는 여권의 실질적인 지도자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인민정의당(PKR) 총재에 취임했다. 대규모 집회 계획 소식이 알려지자 이브라힘 총재는 “현재 인종 갈등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ICERD를 비준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이 확고한 만큼 그들이 집회를 강행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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