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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는 없다] 살인의 고의성 조금이라도 있으면 살인죄, 아니면 치사죄

입력
2018.12.04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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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관악 10대 모텔 살인사건 

피해자 코에 치사량만큼의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갖다 댄 뒤 목을 졸랐고, 피해자는 이내 숨을 거뒀다. 누군가의 힘에 또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잃은 사건, 겉보기에는 모두 살인이라 생각하지만 법원의 판단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관악 10대 모텔 살인’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강도치사로 본 반면, 2심과 대법원 상급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이 최소형량인 강도살인 범죄로 결론 냈다. 이 차이를 가르는 기준은 무얼까.

중요한 건 살인의 고의성 인정 여부다. 살인죄가 성립되려면 목숨을 빼앗으려는 적극적 고의가 있거나 적어도 ‘죽을 수도 있겠다’고 예견하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한다.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도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살인죄가 아닌 치사죄를 적용하는 것이다.

실제 1심 재판부는 “피고인 김모(당시 38)씨가 피해자에게 클로로포름을 사용하고 목을 조르는 행위를 했다는 점이 인정되지만, 살인의 고의까지 있었다는 점이 증명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김씨가 작성한 ‘작업일지’에 적힌 피해자에 대한 묘사를 보면 ‘마취 후 기절했다’는 취지로 작성돼 있었고, 또 김씨가 피해자들이 마취에서 빨리 깨어나도록 창문을 열어두었다는 것을 볼 때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또 김씨가 클로로포름의 마취 효과에 다소 의구심을 갖고 있어 범행 직전 자신에게도 사용해봤다는 것도 판단 근거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김씨가 성매매 여성으로부터 대금을 회수하기 위해 범행을 꾸몄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죽이기 위해 반복적으로 목을 조르고 클로로포름을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생각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다르게 봤다.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며 강도살인과 강도살인미수죄를 유죄로 판단, 징역 40년으로 형량을 올렸다. 김씨가 클로로포름의 위험성과 피해자의 경동맥 부위를 압박하는 행위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고, 건장한 성인 남자인 김씨가 피해자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더욱 강한 압박을 가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 혈액에서 검출된 클로로포름 농도도 단순히 기절시킬 목적을 뛰어 넘는 치사량에 해당한다는 것도 달리 본 이유 중 하나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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