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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영화라는 상품

입력
2018.12.0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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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극장가, 아니 올해 전체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영화계 이슈는 아마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 영화가 음악 영화 트렌드 안에서 평범하게 소비될 거라고 생각했다. ‘퀸’이라는 밴드와 프레디 머큐리를 아는 연령대에겐 노스탤지어 무비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해야 전국 200만명 정도? 이것도 중학교 시절 ‘퀸’을 영접했던 세대로서 후하게 쳐준 예상 스코어였다.

현재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국 관객 600만명을 넘어섰고, 그 기세는 여전하다. 영화 저널리스트라곤 하나 흥행 스코어 맞히는 데는 젬병이긴 했어도, 이렇게 심하게 예측이 빗나간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헛발질 덕분에 영화라는 상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관객을 넘어, 팬을 넘어 ‘지지자’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 사람들의 열광적 반응에 의해 n차 관람과 싱얼롱 상영 등이 이어지며 만들어진 이른바 ‘보랩 신드롬’은, 영화가 ‘감정적 상품’이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킨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영화는 약간 이상한 상품이다. 앞서 ‘감정적’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런 이유다. 분명 가격이 책정돼 거래되지만, 영화는 마트에서 사는 물건처럼 구매되고 소비되지 않는 측면을 지닌다. 영화엔 중독성이 있고, 개인마다 효용가치의 격차가 매우 크다. 예를 들어 1만원을 내고 같은 영화를 같은 극장에서 100명의 사람이 보았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5,000원 정도의 가치만 누렸을 수도 있고, 중간에 보다가 나간 사람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2만원 이상의 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영화는 분명 이윤 추구를 위해 만든 상품임에도 때론 공공재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영화는 자동차나 볼펜과 달리 개인에게 소유될 수 없으며, 함께 소비되고 문화로서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판매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상품이 된다. 심야 시간대에 삼삼오오 모여서 보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수많은 사람이 모여 합창하며 관람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같은 상품이라 할 수 있을까? 영화진흥위원회의 통합전산망 관객수 집계엔 똑같이 ‘1’이라는 숫자로 더해지겠지만, 그 ‘1’은 같은 ‘1’이라고 보기 힘들다.

1895년에 뤼미에르 형제가 1프랑을 받고 ‘열차의 도착’을 상영했을 때 관객들이 진짜로 열차가 쇄도하는 줄 알고 혼비백산하며 도망갔다는 ‘전설’이 말해주는 것처럼, 영화는 흥미로운 속성을 가지고 탄생했다. 하지만 이후 영화 시장이 점점 거대해지면서, 영화라는 상품이 지닌 말랑말랑한 특성은 점점 말살됐다. 시장은 영화를 규격화한 상품으로 통제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타 파워나 장르 시스템 같은 어떤 공식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블록버스터와 멀티플렉스와 와이드 릴리스 등이 발명되면서, 영화를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대량 생산된 후 빠른 시간 안에 대량 소비되는 상품이 됐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상품처럼 보여도, 영화엔 자본이 장악하지 못하는 틈새들이 있다. 많은 제작비를 들였다 해서 반드시 흥행하는 것도 아니고, 블록버스터든 독립영화든 관람료는 평등하다. 그것을 예술로 부르든, 엔터테인먼트로 부르든, 영화라는 상품엔 어떤 방식으로든 욕망과 판타지가 개입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사람의 말초적 감각을 넘어 정서를 자극한다. 꿈과 가장 근접해 있는 상품. 그것이 영화다.

가끔씩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신드롬’을 만나게 되면, 우린 영화라는 상품이 지닌 반역적 속성을 떠올리게 된다. 영화의 가치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에 의해 활기를 띠고 공유될 때 비로소 그 위력을 드러낸다는 것. 이것은 한국영화에 가장 시급한 화두일지도 모른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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